[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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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2. 막다른 길이오
“왜놈 같지는 않습니다만…….”

조운은 잘라놓은 대나무에 눈이 갔다. 여차하면 그것을 집어 들고 죽창으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정평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잔뜩 경계하는 빛을 늦추지 못했다. 그 정체불명의 사내와 저만큼 서 있는 비차를 번갈아 바라보는 품이, 그가 얼마나 비차를 애지중지하는가를 잘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광녀와 사내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사내 모습이 보다 또렷이 잡혀들었다. 조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행색도 그렇지만 표정은 더 그랬다. 조운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 자도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걸인이 분명하다!’

백정 출신인 상돌보다도 더 형편없는 차림새. 태어나서 한 번도 손질하지 않은 듯한 까치집 같은 머리칼, 씻은 지 몇 달은 지났는지 땟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한 얼굴과 팔다리, 아랫도리 주요 부위만 간신히 가린 잠방이, …….

‘나이는 도원 처녀보다 어린 듯한데 중늙은이처럼 해 있구나.’

우선 나이가 젊고 얼핏 봐도 신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운은 그나마 마음이 괜찮았다. 처음 보았을 때 혹시 몹쓸 병에 걸려 있는 늙은이는 아닐까 하고 마음을 졸였던 것이다.

이윽고 광녀와 걸인은 그들 바로 앞에 당도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광녀가 조운 앞에 섰고, 걸인은 부끄러움을 타는지 광녀 뒤쪽에 숨듯이 섰다.

‘도원 처녀보다는 정신이 맑은 편이구나. 다행이다.’

조운의 눈은 광녀보다도 걸인 쪽에 더 쏠렸다. 비록 왜소한 몸집이지만 이목구비가 꽤 반듯한 젊은이였다. 선해 보이는 눈에는 악의가 없어 보는 사람을 편하게 했다.

“동무, 내 동무.”

광녀 입에서 맨 먼저 나온 말이 그랬다. 그러고 나서 광녀는 자기 뒤에 서 있는 걸인의 팔을 잡아끌어 조운에게 소개시켜 주듯 하면서 한 번 더,

“동무다, 내 동무다.”

그러나 걸인은 자꾸만 광녀 뒤로 몸을 감추려 하였다. 대인관계를 싫어하며, 소망이나 고뇌 따위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는 증상의 정신병을 가진 자폐증 환자 같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말 한마디도……. 아, 그렇다. 벙어리!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임에 확실했다. 도원 처녀가 벙어리와……. 조운은 둔중한 물체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듯했다. 그러면 혹시 남의 말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경우를 지금까지 많이 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귀머거리는 아닌 듯했다. 왜냐 하면, 광녀가 무슨 말을 하면 싫다고 계속해서 머리를 흔들거나 손을 내젓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운의 충격은 쉬 가시지를 않았다. 광녀가 너무나 불쌍하고 화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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