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8회)
  • 강덕훈
  • 승인 2014.11.12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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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2. 막다른 길이오
그러나 정평구는 벌써 결단을 내린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에서 웃음기는 싹 사라지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렇게 좋은 동승객들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비장한 기운까지 내비쳤다. 시간이 없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우리 모두 합하면 넷이 아니냐! 그런 빛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조운은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부대꼈다. 인간 도리를 지킬 것이냐? 당장 시험비행에 들어가야 하느냐? 그러다 심경의 변화가 일면서 나중 생각에 패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건 어설픈 감상보다도 현실에 비중을 둔 이성적인 쪽이었다.

‘무슨 어이없고 사치스런 생각이냐? 정신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여러 십년을 두고 오직 이런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네가 아니냐?’

그때 정평구가 막 광녀와 걸인을 상대로 무슨 말인가를 걸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조운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비차와 함께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정평구와 나다. 대의(大義)를 생각하면 광녀와 걸인의 죽음도 영예로운 것이 될 것이다. 시험비행에 실패하여 죽게 되면 광녀와 걸인은 다음 세상에서 누구보다 심신이 건강하고 축복받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늘이 있다면. 뱃속 아이만 해도 그렇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어쩌면 부모처럼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도 높다.’

그러자 저런 모습들로 살아가느니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한 번 하고 가는 게 그들로서도 잘된 일이지 싶었다. 또 아는가. 정평구 말처럼 내가 좋지 못한 쪽으로만 보아 그렇지, 무사히 성공한다면, 아아, 성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광녀와 걸인도 살고, 태아도 살고, 비차는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나고…….

그때쯤 광녀보다도 조금 정신이 맑은 걸인이 더 정평구의 말뜻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걸인은 몽롱한 눈빛을 짓고 있는 광녀더러 손짓을 해가며 무어라 얘기하였다. 조운이나 정평구는 알아들을 수 없어도 광녀는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내가 죄 받을 소리지만, 저 거지가 벙어리라는 것도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디 가서 남들에게 비차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 끝에 조운은 어렴풋 깨달았다. 그들이 시험비행에 동승해 주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주겠다고, 정평구가 제의를 한 것 같다고. 어쩌면 둘이 혼례를 올려 같이 살 집도 마련해 주고 전답도 사 주겠다고 했을지 모른다. 아니, 지금 정평구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한 것을 해 주어서라도 그들을 동참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건 조운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광녀가 걸인의 뜻을 따르기로 한 걸까. 비차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걸인더러 따라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러자 걸인도 얼른 비차 쪽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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