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가을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내년 가을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4.11.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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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생을 마감하는 수풀들과, 빛바래고 익어 떨어지는 낙엽과 열매를 보노라면 우리 역시 한해가 마감되는 듯 허전하고 허탈해지는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치 우리 인간의 한해도 초목과 같은 것처럼 가을철로 마감이 되고 마는 느낌 탓일까? 아니면 가을까지 마무리했어야 할 일들과 감정처리가 덜 된 듯,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면서도 후회스러움마저 느끼게 되는 것도 가을이라는 계절 탓이리라.

좋고 좋은 때를 다 놓치고 나서 굳이 맵고 추운 때에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면 이렇게 가을에는 언제나 한해가 실제로 마감되고 마는 듯 길을 걷다가 문득 발바닥에 밟히는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에 허탈한 찬바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답잖은 계획이었으나 하고자 했던 것들이 정녕 무엇이었나를 떠올려 보려고 더듬게 되고, 생각해 낸 것이야말로 누가 알까 부끄러울 정도로 하찮은 것들이었으며, 그럼에도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대단한 사명 같은 것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의 생활 역시 하루하루를 진실과 정직으로 보내자던 건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었고, 지극히 중심적인 우리 자신과의 약속들이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약속들이 무엇들이었는지조차도 잊어버린 채 엄벙덩벙 되는 대로 한해를 보내고 나서, 어느새 우리가 한해의 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을에 이르지 않았는가.

언제부턴가 자신의 허상이 벗겨지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실상에 놀라고 거부하고 좌절하다가는, 마침내 어느 가을날 발목을 적시는 서리 길을 걷다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위대한 사명의 짐을 벗길 바라는 건 아닐까. 그래서 아무런 사명도 기대도 부여받지 않은 이의 홀가분함과 자유감에 행복해지면서, 지난날의 허황된 과대망상증에서 해방될 수 있을 듯, 그럼으로써 초목처럼 아니 자연처럼 내 깜냥껏 정직과 진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데서 만족과 충만과 기쁨을 느끼고 싶어 했으리라.

인생의 계획에 결코 없었던 허송세월 같아 반항하고 탄식하다가 무력하고 허약해짐으로써, 이제는 위대한 일을 충실하게 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지혜를 터득하길 바랄 수밖에는. 물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의미 있는 무엇을 해내고 싶었는데, 그것이 남들이 어떻게 여기든 자신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되기를 원하면서, 우리는 이 가을 다시 앞으로의 한 해를 위해서, 아니 내년 가을의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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