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바랜 빛나는 도시
빛이 바랜 빛나는 도시
  • 경남일보
  • 승인 2014.11.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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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18세기 중엽 영국으로부터 시작한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됐다. 공업화 및 산업화는 증기기관차, 선박, 자동차,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됐다. 이들은 공장이나 산업시설에 필요한 원자재나 에너지 자원을 먼 거리에서도 손쉽게 수송해 주었다. 이 때문에 유럽의 강호들은 식민지를 앞다퉈 개척했고, 특히 영국은 전 세계에 널린 식민지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는 호칭도 가지게 됐다. 이뿐 아니라 이러한 교통수단은 인간에게 편하고 빠른 이동의 자유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껏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산업화의 부작용들이 부상되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무기의 발달로 지구멸망의 위기가 고조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일상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인구의 폭발적 팽창, 과밀화, 비위생적 환경 등이 새로운 도시문제로 등장해 사람들을 괴롭혔다. 또한 도시공간에 넘쳐난 자동차는 배기가스를 통한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920년대에 대표적 근대 건축가인 ‘르 꼬르뷔제’는 ‘빛나는 도시’라는 도시계획 안을 내놓았다. 그는 도심공간에 햇빛과 바람이 소통하도록 초고층의 마천루를 두었고 그 중간에 넓은 녹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리고 초고층 건물과 지역들은 철도, 도심 고속도로, 공항 등의 교통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이로써 하이테크 기술의 초고층 빌딩, 도심 내 녹지, 쾌적한 전원 주거지, 그 너머로 공장지대와 이들을 연결하는 입체적 교통시스템으로 구성된 ‘빛나는 도시’를 제안했다. 그리고 평지붕, 긴 띠창, 건물 하부를 개방하는 필로티 등의 건축적 원리를 통해 전 세계도시가 동일한 형태를 형성하도록 하는 ‘국제주의 건축’을 주창했다.

하지만 이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금싸라기처럼 비싼 도심의 업무 및 상업지구의 땅을 녹지로 놔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심은 빽빽한 고층빌딩으로 척박한 곳이 됐고, 밤에는 사람 없는 유령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낮에는 업무시설, 입체도로, 주차장, 주차시설 등이 차지하고 있어 사람들은 소외돼 갔다. 또한 상습적인 교통체증은 도시공간의 질을 크게 훼손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동일한 모습을 가지게 된 세계 대부분의 도시들은 지역적 특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로써 ‘빛나는 도시’는 기능만을 강조해 쾌적성을 잃어버린 ‘빛바랜 도시’로 전락했다.

이에 사람들은 온기를 잃어버린 도시공간에서 위로받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고 스스로 생명을 앗아가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게 됐다. 진주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반전을 기하기 위해 무장애 및 자전거 도시 등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교통과 업무중심의 위험하고도 소외된 도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혁신도시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마지막 신도시 지역인 신진주역세권 개발을 앞둔 지금 ‘빛바랜 도시’에서의 진정한 탈출을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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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 2023-08-25 14:14:56
르꼬르뷔지에가 설계한 빛나는 도시에는 공원 같은 녹지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기자님은 비싼 도심의 땅을 녹지로 놔둘 수 없다. 그래서 그 빽빽한 고층빌딩이 세워졌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애초부터 건축가가 계획한대로 도시가 설계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설계대로 지어졌다면 위에서 말씀하신 묹제점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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