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거제장>
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거제장>
  • 김종환
  • 승인 2014.09.29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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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인연 사이로 정다운 대화 오가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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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과 ‘정’이 듬뿍 배어나는 거제 5일장



물건을 서로 교환하고, 동구 밖 사람들을 만나 소식을 나누며 보부상을 통해 산 너머 마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소통의 역할을 했던 장(場).

‘저잣거리’로 불리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휴머니즘이 듬뿍 배어나는 ‘덤’속에서 ‘정(情)’을 나누던 곳이 바로 거제의 5일장이다.

거제시 최초의 장터는 거제 5일장(거제구읍장)이다. 거제면 서정리 비석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제장은 4일과 9일 열리는 장이다.

시장은 물품별로 나눠 정리돼 쌀전, 피류전, 자리전, 채소전, 쇠전, 나무전, 고기전 등 남아있는 시장용어로 그 옛 모습을 알 수 있다.

거제장은 거제 유일의 장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장날이면 서로 소식을 전하고 정을 나누느라 장터는 시끌벅적하다.

이른 새벽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거제장은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정리되지 않은 듯 보이는 장터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느껴진다. 해산물은 해산물대로, 옷은 옷대로, 생활용품은 생활용품대로, 간식거리는 간식거리대로, 과일은 과일대로 제법 정리가 잘 돼 있다.

제철을 맞은 전어, 우럭, 농어, 털게 등이 살아 팔딱거리며 주인을 찾고 있고 쌀, 나프탈렌, 가위, 칼, 신발, 동태, 인삼, 뻥튀기, 형형색색의 옷들과 전병, 찐빵, 유과 등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방앗간도 장날만큼은 대목이다. 기름을 짜고 떡도 한다. 옛날에나 보던 ‘뻥튀기’도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연신 “뻥” 소리를 낸다. 옥수수와 쌀, 보리, 콩은 물론 떡국도 “뻥”하며 튀겨낸단다. 귀를 막아보지만 “뻥” 소리의 위력은 감당이 안 된다.

오래된 사이인지 한 할머니 손님이 생선을 파는 할머니에게 “니, 아침밥도 제대로 못 무스낀데. 밥 사줄테니까 무라”고 하자, 생선 파는 할머니가 “아이고 됐심미더. 아침 마이 묵고 나왔슴미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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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곳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인다. 손님은 물건 값을 더 주려고 하고, 상인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돈을 가지고 밀고 당긴다.

이른 새벽부터 전어 등 생선을 팔기 위해 자리를 깔았다는 할머니는 오늘 전어가 너무 좋다며 목청껏 손님들을 끌어모은다.

물건 값을 두고 흥정하는 것도 참 재미나다. 한 손님이 “돈이 다 떨어지고 버스비도 남지 않았는데 1000원만 깎아주면 안되느냐”고 하자 “그럼 걸어서 가면 되지, 왜 물건 값을 깎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해 놓고는 넉넉하게 2000원을 깎아준다.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다. “다음 장날에 꼭 와서 3000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한다. 상인은 “어허, 그 다음 장에 보면 1000원을 또 깎아줘야 되는데, 이러다 우리 정들겠소”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다.

누가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고, 집을 사서 이사하고, 누구는 5년 만에 손주를 봤다는 등 상인과 주민의 친한 사람들의 일상이 이곳에서 전해진다.

이렇게 거제장은 서로를 챙기는 마음인 인간냄새 물씬 나는 장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장터를 지나는 시내버스 손님도 창문 밖으로 목을 쭉 빼고 물 좋은 해산물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 손님의 장바구니에는 해산물이며 칼이며 옷 등이 가득하다. 장바구니에 담긴 모든 것들이 사랑과 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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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장은 오전 9시 무렵이면 파시다. 일찍 전을 폈던 상인들이 물건을 다 팔고 장을 떠난다. 이때부터는 고정적으로 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몫이다.

거제장에는 유명한 식당이 한 곳 있다. 바로 복개천식당. 낙지볶음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전날 낙지가 들어오지 않으면 장사를 하지 않는다. 또 낙지가 다 팔리면 바로 문을 닫아버리는 냉정한 집이다.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낙지볶음이 아니어서 늘 그 맛이 그립다.

오랫동안 장터를 지켜온 상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덕인지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그 맛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고 한다.

거제의 대표적인 장터로 유일하게 5일장을 지키고 있는 거제장터는 예전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규모도 작고, 찾는 사람도 줄었지만 ‘덤’과 ‘정’은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람냄새가 그립고, 정이 그립다면 거제장을 찾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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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의 장터>

거제의 대표적인 장은 거제 최초의 거제장(거제구읍장) 그리고 아주장과 하청장이다.

거제면 서정 비석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제장은 4일과 9일, 덕치고개 인근의 하청장은 2일과 7일, 아주·아양 경계에 섰던 아주장은 3일과 8일이 장날이었다. 장은 한 달을 육장으로 5일 단위로 열렸다.

하청장은 아주 오래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하청시내 앞에 5일장과 함께 섰던 우시장은 198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오다 1990년쯤 사라져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아주장도 아주 오래전 사라져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거제장은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장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관가(官街)로 동헌, 기성관, 향교 등 각종 관공서들이 밀집했던 거리였다. 일제 때는 경찰서, 군청 등이 있었던 행정의 중심지였다. 거제장터는 서정리 비석거리에 두었다가 종루 아래로 옮겨졌다.

일제 때 시장 주변에는 일본인 어물상, 곡물상, 잡화상 등이 들어서 종래의 시장제도와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을 정도였다. 당시 시장을 찾는 사람도 거제면, 동부면, 남부면, 둔덕면, 사등면, 통영(한산도) 등지로 다양했다고 한다.

거제장터 주변은 농촌과 어촌지역이 어우러져 있어 농수산물, 축산물, 잡화류 등이 다양하게 나와 주민들이 즐겨 찾았고, 거제에서 제일 큰 장터였다.김종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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