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5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5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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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3. 곡예비행
그런데 하늘이 아직은 아니라고 말리시는 걸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소리쳐도 듣지 않던 광녀가 어느 순간 홀연 입을 다물었고, 그러자 걸인도 몸동작을 딱 멎었던 것이다. 또한 그와 때를 같이하여 비차 역시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나뭇잎같이 미동조차 없었다.

아, 살았구나! 조운과 정평구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해는 어느 새 지고 땅거미가 내려왔지만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착륙을 시도하면 늦은 것만은 아니었다. 얼른 비행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해가 지자 바람기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기는 했지만 비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같이 연구해온 두 사람 손발이 척척 맞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성공, 성공이었다!

이윽고 비차는 처음 출발했던 그 장소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마치 한 마리 새처럼 가볍게, 한 마리 가오리같이 유연하게. 두 번 다시는 발을 디디지 못할 줄 알았던 분지였다. 비차에서 내리지 않으려는 광녀와 걸인을 간신히 구슬려 내려오게 하였다. 그런데 땅으로 내려서자마자 또 그들은 놀음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보자…….”

광녀가 또다시 비차 노래를 불렀고, 걸인은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추었다. 아직도 여흥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만큼 단순하다는 까닭이리라.

그래, 이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고, 추고 싶은 대로 추어라. 점점 어둠의 빛에 가려지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던 조운은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도 비차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운을 넋 나간 듯 바라보고 있던 정평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시험비행에 완벽한 성공을 거둔 비차가 아주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분지의 하늘 위로 성급하게 나타난 별 하나가 빛나는 훈장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곳 분지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인 남쪽 방향으로 무슨 물체 두 개가 어른거린 것은. 노래하고 춤추는 데 빠진 광녀와 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얼른 마주친 조운과 정평구의 눈이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다! 조운에게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새나왔다. 천만뜻밖에도 둘님과 상돌이었다. 지리산 쪽 한의원에 있는 줄 알았던 그들이 돌아올 줄이야.

“형님! 형수님과 제가 왔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고 오면서 숨 가쁜 목소리로 상돌이 크게 외쳤다. 둘님은 말이 없었지만 굳이 홀쭉해진 배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더욱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틈에 발견한 걸까. 둘님의 눈이 광녀에게 화살처럼 박혔다. 그때쯤 광녀도 둘님을 알아보고 노래를 딱 멈추었다. 걸인의 동작도 멎었다. 한순간 분지에는 어둠보다 깊고 위험한 침묵이 가로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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