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불행과 아픔에 이별을 고할 때
이제는 불행과 아픔에 이별을 고할 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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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꿈이란 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꿈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현실과 거리가 있으므로 해서 꿈이 될 수 있는 것이며, 현실과 거리가 멀수록 아름다운 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현실은 꿈만큼 아름다울 수야 없겠지만, “살다보니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리워하며 꿈꾸며 마지않던 삶이란 결단코 이런 게 아니었을지라도 꿈을 가진다는 건 여유이자 꿈이며 멋스러운 지혜라고 봐야한다.

모름지기 진정한 꿈이 태어나자면, 좋은 꿈이 탄생되자면 현실을 아름답게 살아야 함을 누가 모르랴만. 원했고 바랐던 바와는 너무나 다르게 살아왔고 아직 그렇게 살아갈지라도, 삶이 불행할일지라도 찬란한 꿈을 꿀 수 있는 그러한 꿈을 갖도록 하자. 그런 꿈을 꾸면서 현실을 잊은 채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얻으면서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자. 뭔가 허망스럽고 뭔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될지라도 무엇이나 극도에 이르면 차라리 무감각해지고 마침내 그 무감감이 쾌감이 된다는 걸 믿자.

정말로 고독한 사람은 고독하다 불평하지 않고 고독을 즐기며 오히려 고독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니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아픔에서도 극복해낼 수 있고, 극복해내는 최선의 방법이야말로 바로 그 아픔과 극에 다다른 나머지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사랑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는 건 아닐까? 무엇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좋아하고 사랑해 버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불만과 불평은 아직도 불평과 불만이 되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탓이리라.

객관적 표피적으로 본다면야 불행한 이들도 많지만, 그들은 차라리 그들의 상황을 불행스럽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절정에 이르렀을까? 아니 달관에 이르렀다 해야 할까? 물론 살 만하고 호강스럽다 하는 이들조차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왠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낀다하지 않는가. 가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무을 위해 꿈꾸며 무을 탐하며 즐기려는 것조차 잊은 채 누구에게나 너무 막막해서 무엇에 라고 정할 수 없는 때, 절박한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그 무엇이 태어나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우리에게 우울과 비애를 줄지라도 이제는 인사를 하자, 안녕이라는 한 마디로서 그 불평과 불만, 아니 그 불행과 아픔을 사랑하는 경지로 이룰 수 없다면 이제 이별을 고하자.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의 뜻이며 마지막은 언제나 시작을 위한 회생이 아니던가. 기쁨이야말로 슬픔에서 태어나고 가을이 저물어야 반드시 겨울이 열리듯 이별 없는 만남과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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