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 경남일보
  • 승인 2014.11.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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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두상 (진주 중앙중학교 교사)
 

본지 기획·특집 ‘지리산 둘레길 코너’를 보는 순간 한 번 도전해 보리라 생각했다. 기자의 수고로움으로 완성된 자료 지리산 둘레길 22번까지 모두 훑어 보았다. 난 지리산 둘레길 21번부터 시작하리라 마음먹고 아내에게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면서 같이 둘레길을 걷자 하니 선뜻 동의를 한다.

유년시절 소풍 갈 때의 마음처럼 설렘과 기대감으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늦게 일어난 탓으로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겨우 8:25분 운리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과 완행버스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골 고향마을의 푸근한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정겹기만 하였다.

우린 운리에서 덕산까지 13.1km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남명 조식 선생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백운계곡으로 발걸음을 한발씩 옮겨 나갔다. 운동과 등산을 해 본지 오래된지라 몸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쉼을 여러 번 반복한 후에 백운계곡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널따란 바위에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흰 구름 색깔의 바위, 수정처럼 투명한 물, 깊은 계곡과 우뚝 솟은 산의 모습, 늦가을 햇살이 투영된 나뭇잎의 고운 색깔, 바람이 가볍게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의 군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나무들도 차가운 겨울 맞을 준비를 하면서 저렇게 아낌없이 버리는데…. 나의 마음 속에는 불평과 불만, 상대방에 대해 원망했던 마음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켜켜이 쌓아 두고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명 조식 선생은 나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시조로 말씀하는 듯하다. “푸른 봉우리 우뚝 솟았고 물은 쪽빛인데, 좋은 경치 많이 간직했어도 탐욕 되지 않아. 이 잡으면서 어찌 꼭 세상사 이야기할 것 있으랴? 산 이야기 물 이야기만 해도 이야기가 많은데.” 선생님의 부드러운 말씀에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이고,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마음속에 아로새겨 보았다.

힘든 하루였지만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라 기쁨은 배가 되었다.

제두상 진주중앙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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