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삶
노년의 삶
  • 경남일보
  • 승인 2014.11.2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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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강선주
퇴직하기 전에는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목욕탕에 휴대폰을 비닐봉투에 넣어 가지고 들어갈 정도로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별로 걸려오는 전화도 없습니다. 애써 소일거리를 찾기보다 빈둥거리며 그냥 푹 쉬어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쉬다보면 ‘이렇게 쉬어도 되나?’ 하는 조바심과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노모는 올해 91세입니다. 나이에 비해 그런대로 정정하고 건강하지만 “아야 아야”하며 늘 끙끙그리며 살고 있고, 솔직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친네입니다. 그런데 그 노친네가 길거리에 나가 종이박스와 빈병도 주워오고, 버려진 텔레비전도 주워옵니다. 그래서 집이 온통 고물상을 방불케 합니다. 게다가 일요일이면 돈 3000원도 벌고 점심도 공짜라며 아침부터 교회에 나가 있습니다. 노친네 역성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죄스럽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틴성당의 천장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것은 66세 때였습니다.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불후의 대작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는 89세의 나이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삶을 마치기 3일 전까지도 손에 망치와 정을 들고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휴식을 권하는 사람들에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으면 영원히 쉴 텐데 뭘 쉬어.”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우쳐 주는 말입니다.

최근 야당의 중진 의원 한 사람이 국정감사 증인석에 나온 자니윤(윤종승·78)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게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져 쉬게 하는 것이다. 79세면 은퇴해 쉴 나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같은 당 상임고문인 모 의원은 10년 전에 “60대 이상, 70대는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투표 안 해도 괜찮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의원이 모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79세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팍팍한 이 땅에서 고단하게 살다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줄 사람에게 국밥값 10만 원을 남기고 쓸쓸히 생을 마감한 어느 노년의 삶이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강선주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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