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 듯 우정인 듯
사랑인 듯 우정인 듯
  • 경남일보
  • 승인 2014.11.3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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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
한갓진 마음의 길목에서, 고개 들고 저 홀로 피어 기다리는 들꽃같이, 청초하면서도 짙은 향기를 풍길 줄 아는 듯 그러한 친구가 있었으면, 아니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연인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우정과 사랑에 대하여 깊이 골똘히 생각하면서 장중하고 멋스러우면서도 무게 있게 중후한 감정과 행동을 다스려 나아가는 기품 있는 사람으로서 우정인 듯 연정인 듯, 그러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흔히 사람들은 남녀의 우정을 믿으려 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것은 숱한 사람들이 우정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달아올라 결국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정과 사랑을 구별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우정과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조차도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다 주고 빼앗고 성급히 받아낸 나머지, 더는 주고받을 것이 없어진 다음에 느끼는 황량한 가슴과 후회와 허무를 가눌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어느 한쪽이라도 성숙된 조절 능력을 갖추었더라면 불행하게도 우정으로 시작하여 뜨겁게 사랑하다가, 끝내는 서로 미워하며 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오직 순정과 순애를 변함없이 지켜 나가도록, 마침내는 사랑도 우정도 예술혼으로 승화시켜서 행동과 감정의 관리를 잘 해낼 수 있었더라면 사랑진 그 자리에 우정을 키우며 우정인 듯 사랑이고 사랑인 듯 우정의 관계를 유지 지속할 수 있었으리라.

서로가 기꺼이 돕고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또한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인간적인 성숙됨이 영원한 친구이자 연인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나긴 세월까지 먼저 인간적인 성숙도가 앞서갈 때 결국 한 편의 예술작품이 탄생 되리라 본다. 만약 요즘같이 조급함이 지나쳐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우리의 시대에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우정의 관계에 신중을 거듭하는 진지한 태도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자세인가.

금방 만나서 불은 활활 타올라 사랑하고 결혼해 버리기도 하지만, 그러나 뒤늦게 잘못됨을 깨닫자마자 금방 이혼해 버리고 마는 이 시대의 경박증에 우정인 듯 사랑인 듯한 아름다운 관계는 얼마나 깊고도 많은 뜻을 되새겨 주는가. 미지근하면서도 열기가 가해지는 고통의 긴긴 세월을 참아내고서야, 사랑도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듯이, 사랑도 우정도 묵을수록 좋은 향기로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 갈 수 있는 소중한 인연, 그러한 인연은 아무에게나 이루어질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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