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6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6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0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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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2. 영웅, 외로운 자화상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저따위 비열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니?”

자기는 6대에 걸친 외동아들이라며, 옆에서 그들 형제 우애를 늘 부러워하는 곰득이란 병사가 말했다.

“무슨 짓들을 하려는지 두고 보자고. 재미있지 않나.”

왜군이 하는 짓거리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마치 공성을 포기하고 당장이라도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려는 모습들이었다.

“거짓 퇴각이다.”

동문 북격대에서 왜구와 대치하고 있는 수성장 시민이 장졸들을 돌아보며,

“참으로 같잖은 작태로다. 우리를 심리적으로 풀어지게 하여 기강이 해이해지도록 수작을 부리고 용을 쓴다만, 우리 수성군 규율이 얼마나 잘 잡혀 있는가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이 아니냐?”

곤양군수 이광악도 왜군이 가장 겁내는 허리에 찬 그의 장검을 소리 나게 툭툭 두드리며 일그러진 웃음을 보였다. 왜군은 오랫동안 그 괴상한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진주판관 성수경도 자신이 맡은 동문 옹성에서 부하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죽어 지옥에 가서도 저 짓을 할 건지 가서 물어보랴?”

전 만호 최덕량, 그리고 군관 이눌과 윤사복 또한 전쟁만 아니라면 지루함을 느낄 정도의 왜군 위장전술을 보고 가증스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가 성을 보전하지 못한다면 조선 군사가 아니니라.”

“여기 구북문으로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런 순간이 머무는 듯 흘러갔다. 이윽고 사람과 짐승 소리가 다 같이 뚝 끊긴 적진은 텅 빈 것처럼 보였다. 찬바람만 씨잉 지나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더욱이 그들이 모든 불을 껐기 때문에 그곳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의 늪에 잠겨 있었다.

“우리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장졸들더러 주의를 주는 시민의 음성 끝에도 어둠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밤의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모두 잠든 것처럼 해보여야 하느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군사들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전의 굳은 태세만은 밤의 장벽을 무너뜨릴 만하였다.

 
그 고을 판관 자리에 있을 때부터 하나같이 은혜로써 군사와 백성들을 대하였던 시민. 그리하여 온 경내 사람들이 그를 부모와 같이 여겨 한 치 어긋남도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수성군은 보았다. 저쪽 캄캄한 속에서 소리 없이 돌아오고 있는 그림자들을. 그것은 어두운 심해 속에서 크고 시커먼 가오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비쳤다. 무명천과 화선지, 솜뭉치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든, 전반적으로 흰색인 비차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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