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6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6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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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2. 영웅, 외로운 자화상
수성군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야음을 틈타 자기들 진영으로 몰래 돌아간 그들이 공격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한다는 것을. 만약 시민이 미리 알고 군사들을 시켜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면 어떡할 뻔했는가.

“우리 역사에 다시없는 성주님이신 것을!”

시민을 향한 수성군의 신뢰와 존경심은 지상의 어둠을 뚫고 천상의 별까지 닿을 만하였다.

“도깨비 같은 놈들! 뿔 자르듯 대가리를 날려버릴 테다.”

“어두워서 똥구덩이에 빠진 놈도 있을 거야.”

그러나 조선군이 전투 준비를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벌써부터 철통같은 만반의 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저마다 칼이며 활을 불끈 쥐고 적이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물소리도 멎은 듯하고 풀벌레소리도 끊긴 지 오래였다.

시민은 수성장으로서 수성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장졸들 앞에서 큰소리치는 것과는 달리 마음은 언제나 조마조마하고 무겁기만 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어릴 적부터 전쟁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대장 노릇을 하고, 고향 백전천에 살던 나쁜 이무기를 직접 만든 뽕나무활과 쑥대화살로 처치하기도 했던 이 시민이건만…….’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 그곳에서도 그가 최고 지존인 왕이었다. 하지만 그건 최고 실권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성민들의 목숨을 지켜내어야 할 책임자를 일컫는 말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의 양쪽 어깨 위에 얹힌 ‘목민관’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다지도 무거울 줄이야. 그 밑에 깔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정녕 두려운 일인 것을. 나 하나가 자칫 경망하게 그릇된 판단을 내릴 경우, 얼마나 많은 동족들이 저놈들 손에 죽어갈 것인가?’

되돌아보면, 몸소 밥과 장(漿)을 가지고 목마르고 허기진 군사들을 분주히 찾아다녔고, 빗발치는 적탄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바윗덩이같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휘하 장졸들에게 호소하였다.

“지금 온 나라가 결딴나 없어지고 겨우 남은 곳이 얼마 되지 않으니, 단지 여기 이 성 하나에 조선의 명맥이 달려 있도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조선이란 나라는 다시없다. 뿐이겠는가. 패배하게 되면 성내의 숱한 목숨들이 왜구들이 휘두르는 칼끝에 의해 원귀가 되고 말 터, 모쪼록 너희 장수와 병사들은 죽기로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불과 3천8백여 명의 소수 병력으로 3만을 넘는 대군의 왜구를 맞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쳐왔다. 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면 경상우도의 여러 고을은 말할 것도 없고, 저 곡창지대인 호남을 넘겨주게 되는 것이니, 그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돌멩이도 알고 잡초도 알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힘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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