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6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6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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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2. 영웅, 외로운 자화상
시민은 오싹해질 만큼 심한 외로움에 부대꼈다. 고향의 잣나무를 떠올리며 높은 기상을 가지려고 애썼다. 1인자의 자리는 이다지도 힘들고 버거운 것인가. 이래서 어머니는 자식이 무인(武人)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그토록 말리셨던가.

‘가장 남아답지 못한 게, 자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는 것이거늘. 평민이 부럽도다. 고위직에 있는 문관(文官)은 부럽지 않지만. 다시 태어나면 땅을 파는 농사꾼이 되고 싶다.’

농군이 어렵다면 조운이처럼 비차 같은 기구를 만드는 장인(匠人)은 어떨까. 그것도 괜찮을 성싶다. 하지만 실패한 장인이 된다면? 그러자 비차 제작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조운이 그렇게 가련하고 애처롭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는 일생을 바칠 각오와 결심을 하고 전념하였던 제 뜻을 마침내 이루어낸 훌륭한 사람인데도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그렇다면 내가 끝까지 성을 지켜내는 일에 성공해도 남들이 나를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요행히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도 말이다. 요행? 요행히?’

시민은 그만 실소했다. 천하의 이 김시민이가 왜 이렇게 나약해지고 말았다는 말인가. 요행을 입에 올리고 있다니. 차라리 떳떳한 불행을 맞이하라. 찬연한 죽음을.

왜군이 짐바리를 실어 내가는 등 거짓으로 퇴각하는 체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어림잡아 한 시간 정도가 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들이 시민을 비롯한 수성군들에게는 하루, 아니 한 달은 넘는 것 같았다. 시민은 마음을 추스르며,

‘어디 요놈들이 어떻게 할 속셈인지 구경이나 해볼거나. 오가느라 노고도 많았을 텐데.’

저 식년(式年)에 숙부 제갑의 도움을 받아 응시했던 무과 별시(別試)에서 장원급제할 만큼 병법에 뛰어난 시민이, 적진을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분명히 왜군은 두 부대로 나누어 공성할 계획 같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적을 알았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이쪽은 무기와 군량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너무 열세니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4경 중(오전 2시)쯤이었다. 드디어 1만도 넘는 왜군이 동문 쪽 새로 쌓은 성벽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새카맣게 몰려오는 게 꼭 오랫동안 굶주린 개미 무리 같았다. 성가퀴 부근의 남쪽으로 많이 뻗은 나뭇가지들이 그들을 막으려 손을 그쪽으로 내미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공격해오는 왜구의 형상들이 참으로 기기묘묘했다.

 
 

긴 사다리를 가진 자, 화살이나 돌을 막으려고 방패를 짊어진 자, 향교에서 제향 때 쓰는 제기(祭器)의 일종인 보궤를 뒤집어쓴 자, 멍석을 오려서 머리를 싸맨 자, 짚이나 쑥대, 풀을 엮어 만든 모자를 쓴 자, …….

그런 갖가지 희한한 전투 장비를 갖춘 왜군이 공성하는 방법도 실로 가소롭고 기상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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