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6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6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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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3. 운명의 총성
“고맙다. 모두들 정말 고맙다.”

성가퀴 근처에 서 있는 나무들도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숨을 죽이고 있던 밤새들도 소리를 낼 듯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저놈들부터 물리치도록 하자.”

범 같은 장수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무너졌던 조선군 방어선이 정비되었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그곳 장졸들도 시민과 성수경이 지키고 있는 동문 쪽과 같은 방법으로 왜구를 격퇴하기 시작했다. 장수들은 앞에 나서서 외쳤다.

“모조리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사사(射士)들은 잽싸게 화살을 재며,

“조선의 화살 맛을 톡톡히 보여주마. 어서들 오라!”

여러 날을 두고 벼르던 성 함락을 바로 눈앞에 맞이하고 기세가 등등하여 좋아 날뛰던 왜군은, 갑자기 거짓말같이 전세가 뒤바뀌자 공격할 용기를 잃어버린 듯했다. 전술이고 뭐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거렸다. 게다가 거기 역시 왜군을 상대한 것은 정규군인 군사들만이 아니었다. 성내의 늙고 약한 민간인들도 앞다퉈 나섰다.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됐지만 네놈들에게 저승길을 양보하마.”

“조선여자들의 서릿발 같은 증오심과 복수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무기는 원시적이고 단순했다. 돌과 불과 물이었다. 하지만 돌이 굴러가고 불이 던져지고 끓는 물이 들이부어지는 곳에는 수없이 죽어가는 왜군이 있었다. 성 안에 있던 돌이나 기왓장은 말할 것도 없고, 초가집 지붕이나 담장을 덮었던 이엉도 거의 없어졌다. 그곳에서는 군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무기가 아닌 물건이 없었다.

“대체 성을 지키는 조선군 숫자가 얼마야?”

“장수들이 우리 병사들을 속인 게 분명해.”

“맞아. 조선군은 군사도 얼마 안 되고 무기도 없다더니.”

왜군들은 지휘부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갈수록 전의를 상실해갔다. 그 분위기를 간파한 조선군들은 적을 하나라도 더 없애기 위해 눈을 번쩍였다.

“이 밤이 가기 전에 저놈들을 모조리 황천으로 보내자.”

동녘이 희붐하게 터오기 시작했다. 적은 물론 아군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게 했던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대자연의 규칙적인 운행 앞에서는 목숨을 내건 인간들의 전쟁도 철부지 아이들 장난에 지나지 않은 법인가.

그때 윤사복이 지치긴 해도 흥분된 목소리로 이눌에게,

“적의 세력이 많이 누그러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눌도 반가운 듯 최덕량을 보고 말했다.

“윤 군관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들 공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군요. 우리가 성을 지켜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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