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2014년을 보내며
[여성칼럼]2014년을 보내며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0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2014년이 저물어 간다. 한 20여일만 있으면 우리는 2015년이라는 숫자를 어색하게 쓰기 시작할 것이다. 2014년은 정말 견뎌내기 힘든 한 해였다. 따뜻한 봄의 한가운데에 있던 4월 어느 날, 우리를 강타했던 세월호 참사부터 윤일병·임병장 사건으로 대표되는 군대 내 폭력과 살인사건, 급기야 연말에는 사극 ‘조선왕조 500년’을 보고 있는 듯한 권력층 주변인의 국정개입 사건까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연이어 다가오고 있는 충격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세월호 참사가 있어서, 2014년에는 여느 해처럼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상투적으로 쓰던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눈앞에서 바다에 침몰해 들어가는 배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수많은 생명을 손 놓고 허망하게 죽게 하는 국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렇게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보았으니 이제는 올라갈 길만 남았다는 한 조각의 희망을 품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이것이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얼른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지 못했고, 현실에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는 권력과 정치권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그래서 8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제대로 된 원인규명도 없이 조급하게 이어진 세월호 재판결과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여야협상 끝에 나온 누덕누덕한 세월호 특별법이다. 그리고 1년 내내 절망의 나락에서 한줄기 희망으로, 거기에서 다시 절망으로 파도를 타고 살아온 우리를 기다린 것은 대통령 측근들의 암투라는 해일과 같은 파도였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 사는 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함께 살아나가야 할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을 통해 얼른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문제를 놓지 않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고, 사회 여러 곳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상식적인 부분들을 상식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제는 충격의 파도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정신을 다잡아서 우리가 다시 잡고 일어설 끈을 찾아봐야 한다.

지금 눈앞에 떠오르는 그 끈의 하나는 ‘기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기본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나치게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오히려 허황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기본, 기본적인 인간관계, 기본적인 삶을 생각해보고, 그것에서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 기본은 사람이다. 국가에서는 국민이고, 도민이고, 시민이며, 학교에서는 학생이고, 기업에서는 노동자이다. 2015년에는 제발 삶과 인간관계의 기본에서 시작해 우리의 삶이 상식적으로 이뤄지는 한 해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