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6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6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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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3. 운명의 총성
최덕량이 밝아오는 하늘가를 올려다보며 입 안으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하늘에 감사하는 건지 부하들을 칭찬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 번질거리는 건 분명 눈물 자국이었다.

찰거머리 같은 왜군도 마침내 한계를 느끼는 듯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전투는 그 결과가 드러나 보였다. 귀신도 점치지 못했을 조선군의 승리였다. 그래도 저들은 공성을 멈추지 않았다. 성에서 내려다보니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조선군도 끝까지 수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북문을 지키고 있는 조선군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신북문의 문루 쪽에서 온 세상이 슬퍼하고 진노할 그런 일이 일어나리란 것은.

그때쯤 동문 쪽을 공격하던 왜군은 거의 물러가고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거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전투에 임하던 수성군은 그야말로 지칠 대로 지쳐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 쉬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을 해내었다 싶었다. 그러나 장수들도 군사들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시민과 성수경은 치열했던 그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천지신명도 놀랐으리라. 그 많은 왜적을 상대로 하여 싸웠는데도 조선군 희생은 아주 미미했다. 기적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곳곳에 썩은 볏단처럼 널브러져 있는 것은 왜군 시체였다.

“성 판관! 우리가, 우리가 성을 지켜냈소이다. 하하하.”

시민은 군사들을 선두 지휘하느라 목이 있는 대로 쉬었지만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성수경도 차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굳게 닫힌 문루의 출입문과 문루 위에 올라 적의 동향을 두루 살피고 있는 초병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이 모두가 장군의 탁월하신 통솔 지휘 능력 때문이겠지요.”

“아니요. 성 안의 군, 관, 민이 혼연일체로 싸워준 덕분이오.”

동방이 점점 훤해지고 있었다. 성수경의 얼굴도 그처럼 밝았다.

“이번 전투가 가장 크게 이긴 싸움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남강 쪽 하늘 높이 흰 물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게 시민의 눈에 띄었다. 순간,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게 조운의 얼굴이었다. 그러자 물새가 비차처럼 비쳐들었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조운과 정평구의 모습도 나타나 보였다.

‘그 비차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 승리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민이 입을 열었다.

“왜적들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성수경은 아직도 피비린내가 묻은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정말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요.”

시민의 짙은 눈썹이 꿈틀,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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