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잘 살아야 일할 수 있다
[객원칼럼]잘 살아야 일할 수 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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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EU연구소장)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근대 및 현대 기술 및 기계발달은 인류에게 많은 부와 물질적 혜택을 안겨다 주었다. 대량생산으로 물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고, 교통의 발달로 먼 도시나 나라는 물론이고 심지어 우주여행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한 일자리의 대량창출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변화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첫째로는 인간의 존재와 삶이 기계처럼 변화된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는 1913년 헨리 포드가 자동차 공장에 최초로 설치한 컨베이어 벨트 생산라인이었다. 그 결과 자동차 산업은 대량생산화의 혁명을 불러일으켜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자동차나 기계의 소모품처럼 빠르게 전락했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똑똑한 바보가 되어 갔다. 심지어 가장 창의성을 요구하는 건축사사무소 같은 곳에서도 오직 창문 하나만 그리다가 직장을 마감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졌다.

더 큰 문제는 도시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도시는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로 인한 과밀화, 주택난, 교통체증, 환경오염 등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특히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된 아파트나 주택은 그야말로 거주기계였다. 이러다보니 도시는 정체성, 인간성, 공동체적 성격을 잃어버렸고, 삶을 영위하는 곳이 아닌 일의, 일에 의한, 일을 위한 곳으로 전락해 갔다. 도시공간은 사람이 아닌 일을 위한 업무시설, 자동차 그리고 이를 위한 도로, 주차시설 등이 점거하게 되었다. 이로써 시민은 도시에서 소외되고 범죄나 우울증 및 자살 등의 정신적 문제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과 교정의 기미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시작된 도시재생사업 때부터이다. 우선 도시공간을 이전처럼 사람중심이 되도록 차 없는 거리, 아케이드, 아트리움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괴되었던 자연을 회복하기 위해 생태환경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산업단지에도 지역전통과 인문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전시관, 문화회관, 도서관 등의 문화적 성향의 시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과거 일하기 위해서만 살았던 도시를 이제는 진정한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로 바꾸어 나갔다.

현 정부의 핵심 건설정책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도시재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주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시재생사업을 시행하고 있거나 계획 중에 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도시나 지역을 재생하는 일이 단순한 정비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죽어라고 일만하던 얼간이 같은 도시를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도시나 나라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향토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먼저 행복하게 사는 도시를 만든 다음, 재미있고 보람차게 일하게 하는 것이 현대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잘 살아야만 힘을 얻어 잘 일할 수 있다.

 
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EU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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