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7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7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1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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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1. 이광악나무
조운은 시민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러잖아도 아무도 모르게 혼자 뜻하는 바가 있어, 어떻게 하면 그와 단 둘이 만날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던 조운은, 한걸음에 내달려 시민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 부끄럽구려.”

시민은 간신히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부르튼 핏기 없는 입술을 힘없이 달싹거리는 게 보는 사람도 고통스럽게 했다. 조운은 눈물부터 앞을 가렸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오던 시민이 아니었다. 언제나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장수의 모습 대신, 불가항력의 죽음을 눈앞에 둔 한없이 나약해빠진 병자만이 거기 있었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시민은 그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드는지 연거푸 가쁜 숨을 몰아쉰 후 가까스로 말을 이어갔다.

“각별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

조운은 상돌과 충청도 노성 땅의 윤달규를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예, 어서 분부만 내리십시오.”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의지와 결단력도 같이 약해진다더니, 시민은 이번에도 그답지 않게 변죽만 울렸다.

“마음만 먹으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칼로 내 이마에 박혀 있는 이 총알을 빼주시오. 부탁하오.”

“예에? 초, 총알을……?”

조운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앉고 말았다. 수백 개의 총탄을 한꺼번에 맞는 충격이 그러할까? 시민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간곡하게 청했다.

“칼로 하는 게 힘들다면 대나무 꼬챙이라도 좋소. 이것만 제거할 수 있다면…….”

“장군!”

“이런 말을 하는 내 심정, 그대는 알리라 보았는데…….”

조운은 당장 일어나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었다. 기대를 갖고 띄웠다가 추락한 비차의 잔해를 헤치고 빠져 나올 때 느끼곤 하던 그 참담함이 엄습했다.

“본관이 없어도…….”

조운은 감히 시민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 쇠털같이 많았던 실패도 그를 위한다는 일념에 견뎌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시민은 좀 더 조운을 궁지로 모는 설득조로 나왔다.

“우리 군사가 왜적을 잘 물리쳤다고 들었소. 그러하니…….”

급기야 조운은 수성장의 말을 중도에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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