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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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2. 사라진 이상한 새
시민의 이마에 눈이 갔던 시약은 얼른 외면해버렸다. 고결한 성품을 입증해 주듯 단정했던 이마가 말이 아니었다. 상처 부위는 갈수록 썩어 들어가고 진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민의 표정은 오히려 밝아 보였다.

“아우! 지금 이 형은 아주 마음이 편안하다네. 사실 그만하면 사내대장부가 할 일은 어느 정도 한 셈이 아니겠는가?”

그때 들려오는 종소리는 분명 연지사에서 성내로 가져온 연지사종이 내는 소리였다. 조선군 사기는 하늘까지 높여주고, 일본군 사기는 땅속까지 떨어지게 하였던, 아름답고 신비한 천년의 범종.

시약은 또 그냥 시민이 누워 있는 방을 돌아 나와야 했다. 그러면서 얼핏 본 시민은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통증을 견디기 위해 까칠해진 입술을 앙다문 채로.

시약은 몰랐다. 그게 자신이 이 세상에서 본 형의 마지막 모습이 되리란 것은. 자기 숙소로 돌아와서 방문을 꼭꼭 걸어 닫고 얼마나 오랫동안 소리 죽여 눈물을 펑펑 내쏟고 있었을까. 시약은 알 수 없었다. 그 시간이 한 식경쯤인지 아니면 한나절이었는지.

어쨌든 시민을 모시는 휘하 군사가 보낸 급보를 받고 황급히 시민의 처소로 간 시약은 그만 방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왜 형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뜻을 헤아리지 못했던가?

“모, 목사 영감께서…… 나, 나무못으로…… 타, 탄알을……!”

시약은 보았다. 시민의 몸 옆에 나뒹굴고 있는 나무못 하나를. 시민은 그 나무못으로 이마에 박힌 탄알을 빼내고 눈을 감은 것이다. 더러운 왜놈 총알을 내 몸속에 넣은 채 죽을 수 없다던 그의 말이 생각나서, 시약은 그 나무못으로 자기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시민 형님의 춘추가 이제 고작 39세에 지나지 않거늘.’

그러나 비통에만 잠겨 있을 틈이 없었다. 이광악을 비롯한 장수들이 총지휘소에 모여 긴급비상회의를 열었다.

“이 사실이 적은 물론 아군에게 알려져서도 아니 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시민의 타계 소식은 온 성중에 퍼졌다. 그리하여 모두가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곡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관기 하나가 사흘 낮밤을 잠시도 쉬지 않고 칼춤을 추다가 그만 자진(自盡)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홍여, 붉음과 같은 단심(丹心)을 실은 춤사위, 그 춤이야말로 저승춤이었다는 것을.

‘장군! 원통하시고 외로우시더라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몸이 장군께 가서 그 원통하심과 외로우심을 말끔히 씻어 드리겠습니다.’

고을 백성들이 얼마나 시민을 우러러보고 안타까워했는가는 그들이 한 행동을 통해 잘 엿볼 수 있었다. 그후 1년이 넘도록 성민들은 소복 차림을 하고 고기는 일절 입에 대지 않은 채 채식만을 하며 슬퍼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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