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80회·끝)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80회·끝)
  • 경남일보
  • 승인 2014.12.2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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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2. 사라진 이상한 새
시민의 행상(行喪)이 고향 땅을 향했다. 운구가 지날 때면 사민(士民)들이 서로 다투어 상여에 매달려 울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각, 가마못 안쪽 동네 가장 저 뒤편에 있는 오두막집에서도 난데없는 통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곳 집들은 물론이고 비차 제작장인 분지에서도 들리는 그것은 장년의 사내와 노파의 울음소리였다. 바로 광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였다.

진주성 공락에 실패하고 퇴각하던 왜구들은 홧김에 닥치는 대로 온갖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그 피해자 중에 도원 처녀와 걸인도 섞여 있었을 줄이야.

여보. 분지의 오리나무 밑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둘님이 조운을 부르며 손을 잡아왔다. 거기 공터에 널려 있던 비차의 재료나 잔해물은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고, 완성된 비차는 짚과 비닐, 가마니, 마른 나뭇가지 따위로 꼭꼭 덮어두었다.

“도원 처녀가 그 걸인과 꼭 껴안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오. 부디 저승에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

조운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광녀가 나타나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저 ‘비차의 노래’를 불러댈 것만 같았다. 자기 고향 전라도 김제로 돌아간 정평구와 백정 상돌, 그리고 광녀와 걸인이 없었다면 비차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조운의 입에서는 눈물에 젖은 소리가 새나왔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한편, 시민의 행상이 함양에 이르렀을 때였다. 조정에서 시민을 우병사로 승진시킨다는 교지(敎旨)가 전해졌다. 훗날 이야기지만, 포로가 되어 왜국에 있는 자가 우감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풍신수길의 종질(從姪)인 우시등원랑이 시민에게 패해 창원으로 도망가 분하고 한(恨)됨이 병이 되어 죽었다는.

그 기록보다도 시민을 더 잘 말해주는 것이, 일본의 전통 연극 가부키(歌舞伎)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은 그 연극 속에서 악의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니, 시민이 이끈 진주성전투에서 조선에 패한 일본의 패배의식과, 시민을 향한 그네들의 열등감 내지는 통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당시 조선 목사 스무 명 가운데 진주목사 김시민만을 따로 ‘모쿠소(牧曾)’라고 불렀다.

여기는 왜국이 아니라 다시 조선 땅이었다. 시민의 운구는 조선 땅에서 조선 땅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민이 가고 있는 그 조선의 하늘 위로 여태 보지 못했던 이상한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시민의 운구 위에서 빙빙 돌면서 마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하는 것같이 보였다.

이윽고 시민의 운구가 사라졌을 때, 그 거대한 새도 몸을 돌려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두 번 다시는 그 새를 보지 못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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