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숙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고려시대 시인 이규보는 달을 보고 ‘산승이 달빛을 탐내, 물 긷는 병에 달빛까지 길어 왔네. 절에 도착하여 문득 생각이 나서, 병을 기울여보니 달빛도 없더라.(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라고 읊었다.
시에 나타난 시인의 감흥과 정서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세상에 이렇게 멋진 표현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시를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내가 느낀 그대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느끼는 자의 몫이었기에 말로는 다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일반 대중들에게 한문학이라는 것은 중문학의 아류(亞流)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필자가 전공이 한문학이라고 하면 “중문학과가 있는데, 한문학과가 왜 있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문학이 우리의 고전과 역사·철학·문학을 포괄하는 학문영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다 한문학 하면 ‘공자왈, 맹자왈’을 먼저 떠올리며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니 그 고정관념을 깨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런데 이런 시를 한 수 읊어주면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느끼는 사람은 저절로 그 멋에 빠져든다.
우리의 고전 속에는 선인들의 멋과 풍류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은 선인들의 재치와 해학이 담겨있다. 그래서 한 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고전인데, 고리타분함으로 포장을 하고 있으니 그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것도 고전이다.
조선시대에 ‘책만 보는 바보(看書痴)’라는 별명을 가진 이덕무는 책 읽는 것이 좋아 하루 종일 해가 가는 방향을 따라 서안(書案)을 옮겨 가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하루인가.
새해에는 TV, 스마트폰, 컴퓨터 등등 각종 첨단기기에 매몰되어 가는 우리 영혼을 깨어나게 해 줄 고전에 한 번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굳이 한 권의 책이 아니더라도 이규보의 시와 같은 한시 한 수라도 읊어보며 그 감흥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이영숙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