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스트
로맨티스트
  • 경남일보
  • 승인 2015.02.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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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능석 (전문예술법인 극단 현장 상임연출)
고능석

얼마 전 한 공연 기획자를 만났다. 40대 중반인 그는 작은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영세한 극단이나 무용수들과 함께해 왔단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공연자들에 대한 애정 또한 매우 깊어 보였다. 당연히 공연기획에 대한 내공도 상당했다. 단순한 기획자가 아니라 좋은 창작 파트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쭉 한길을 걸어왔는데 딱 한 번 외도를 했단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진 빚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1년 간 학원 강사를 했단다. 수업료를 원장이랑 강사가 5 대 5로 나눠 가지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학원이었는데, 자신의 능력이 좋아서였는지 수강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학원 원장은 그에게 장기 근무를 부탁했단다. 빚을 다 갚은 그는 단박에 거절하고 기획사로 복귀했단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은근히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다. 밉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같이 있었던 연출가 형에게 물었다. 그 형은 서울에서 그 기획자와 5년 간이나 함께 작업을 한 분이었다.

나 : 그 친구 참 괜찮은 기획자죠?

연출가 형 : 그래, 좋은 친구야. 로맨티스트지!

나 : 로맨티스트요?

연출가 형 : 맞잖아, 로맨티스트. 쥐뿔도 없으면서 돈도 안되는 일을 좋아서 즐기면서 하잖아. 그러니까 로맨티스트지.

맞다, 로맨티스트.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고 나에게 계속해서 자랑질(?)을 하고 있었다. 공연팀을 데리고 외국 나가서 고생한 이야기부터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 미래에는 어떤 공연을 하면 좋겠다 등등.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라고 불러 달라는 무대미술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공연이란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라고. 그 기획자는 로맨티스트 이전에 휴머니스트였다.

고능석 (전문예술법인 극단 현장 상임연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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