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 번역 출간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 번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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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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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다이어 장편소설
▲ 제프 다이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1995~2013)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우한 두 남녀가 오랜 시간 차를 두고 다시 만나 결국 결혼해 지지고 볶는 과정을 그린, 한마디로 사랑의 민얼굴을 그린 영화다.

낭만은 세월 속에서 현실의 힘에 어김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 명민한 감독은 배우들의 얼굴 주름과 늘어진 뱃살, 점점 짧아지고, 엇나가는 대화를 통해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E.M 포스터상, 서머셋 몸상, 전미도서비평가상 등을 받은 영국의 유명 작가 제프 다이어의 장편소설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도 ‘비포 선라이즈’처럼 짧고 강렬한 만남에 대한 기억을 따라간다.

“인생의 모호한 단계”인 40대 중반에 들어선 제프는 “살아오면서 커다란 목표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오로지 “작은 승리와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프리랜서 기자다.

“한없는 지겨움의 정점에 도달한” 그의 일상을 런던에 둔 채 제프는 비엔날레 취재를 위해 베니스(베네치아)로 향한다. 취재보다는 공짜 술과 예쁜 여자들과 허영기 가득한 대화가 난무하는 파티장이 목표다.

“수없이 많은 작품을 보고 파티에 가고 진탕 술을 마시고 몇 시간이고 X 같은 말들을 지껄이다가 누적된 숙취에 시달리며 손상된 간으로 런던으로 돌아가는” 뻔한 일정일 테지만 말이다.

제프는 파티에 도착하자마자 찌는듯한 무더위와 사람들의 불친절과 비싼 물가를 과거의 추억인양 잊어버린다. 미국에서 날아온 갤러리 종사자 로라 프리먼 덕택이다.

사랑에 빠지는 건 한순간일 수 있고, 그 순간에는 가장 평범하고 멍청한 질문조차 세레나데 같기 마련이다. 제프는 로라의 “그래서, 베니스에 언제 오셨나요?”라는 가장 평범한 질문에도 사랑을 느낀다. 그의 전 세포는 이제 그녀의 환심을 사는데 활짝 열린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누가 봐도 아름답겠지만, 아마도 그만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힘으로 감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었다.”(62쪽)

연락처를 끈질기게 요청하는 제프를 향해 로라는 ‘우연한 만남’을 기대한다면서 그의 곁을 떠난다. 패닉에 빠진 제프는 베니스 전체를 샅샅이 훑는다. 그러나 수많은 파티와 전시회장을 돌아도 그녀를 만날 수가 없다.

낙담한 제프는 어느 파티장에서 기적처럼 로라를 만나고 둘은 비엔날레를 즐기기 시작한다. 코카인과 술, 섹스로 이어지는 환락 속에서 그는 이제 “인생이 살 만해졌다는 생각”을 가진다.

사실 그의 삶은 그렇게 점철됐었다. 제프는 꾸준히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술을 마셨고, 마약을 했고, 파티에 갔고, 여자들을 쫓아다녔다. “인생이란 단물이든 쓴 물이든 전부 삼켜야 하는 것”이지만 제프의 삶은 쓴물다운 쓴물은 삼켜본 적이 없는 반쪽짜리 인생이었다.

로라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에서 원했던 모든 것을 압축해놓은 것 같은” 시간을 경험한 제프. 그러나 비엔날레의 끝이 다가온다. 게다가 로라라는 사람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여인이다. 제프는 계속해서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소설은 비엔날레에서의 짧은 며칠을 그린다. 환영처럼 다가온 사랑에 대한 갈망과 그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세밀하게 포착했다.

이 소설은 ‘베니스의 제프’와 ‘바라나시에서 죽다’는 두 편의 이야기로 이뤄졌다. ‘바라나시에서 죽다’는 제프가 사라지고 주인공인 화자가 등장해 일인칭으로 서술된다. 취재차 며칠 만 묶으려 했던 프리랜서 기자인 ‘나’는 바라나시에 반해 결국 몇 달을 머문다. 교통지옥이지만 영적으로 풍요한 이 도시에서 ‘나’는 섹스와 쾌락으로 점철됐던 삶을 떠나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뜬다. 그는 마침내 갠지스강에 몸을 담근다.

“내가 몸을 씻었는지 아니면 이제부터 몸을 씻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인도인들이 나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내가 그들의 일원이 되기 위한 유의미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413쪽)

사흘. 436쪽. 1만3천원

연합뉴스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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