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훈, 유영철 시 분석 '심리프로파일링' 시도
권성훈, 유영철 시 분석 '심리프로파일링' 시도
  • 연합뉴스
  • 승인 2015.02.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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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끝을 보았다. / 눈물을 보았고 / 슬픔을 보았고 / 공포를 보았고 / 운명을 보았다. / 그들의 / 마지막을 보았다.’

누군가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쓰인 이 시는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하다. 화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담은 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시의 작자는 다름 아닌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다.

‘마지막’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유영철이 살인 등 혐의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 이후인 2004년 10월15일 쓰였다고 한다. 당시 유영철은 한 월간지 객원기자와 32통에 이르는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여기에 그가 쓴 시가 포함돼 있었다.

희대의 사이코패스 유영철의 시에서는 어떤 내면이 감지될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시 치료’라는 특이한 분야를 연구하는 권성훈은 저서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에서 유영철의 시를 매개로 한 ‘심리적 프로파일링’을 시도한다.

저자는 ‘시는 폭력을 대체하는 언어이며 고통에 바쳐지는 언어적 희생양’이라는 관점으로 유영철의 시에 접근한다. 직업적 시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시를 창작하며 자신의 감정을 순화된 언어로 표출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서다.

그런 시각에서 저자는 유영철의 시 ‘마지막’을 해부하고서 “생명의 ‘끝’을 보기까지 ‘눈물’ ‘슬픔’ ‘공포’ ‘운명’ 등이 확장식 은유로 사용되는데, 병치된 시행 속에서 압축과 리듬이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화자는 살인자가 아닌 심판자로 죽음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낸다”고 분석한다.

이를 “신비주의적인 분열된 쾌락의 도착증세”로 본 그는 슬라보이 지제크를 인용, 유영철이 “신에 대한 직관으로 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믿는다. 관조하는 자신의 눈을 신의 눈과 혼동하는 것은 도착적 희열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영철은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좌절, 우울, 불안, 공포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모든 이가 사이코패스의 길을 걷지는 않는다. 저자는 유영철과 성장 배경이 비슷한 시인 이승하의 글을 유영철과 대조하면서 글쓰기를 통한 억압 극복과 승화, 자기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수사당국에 의해 사망이 확인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 고아 출신 승려 조오현 스님의 불교시 등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불행한 삶을 살면서 고통스러운 세계로부터 창작한 이들의 시를 통해 고통에 대한 ‘언어적 제의(祭儀)’가 어떻게 수행되는지 안내한다.

교유서가. 236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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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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