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낙원, 보리수동산
아이들의 낙원, 보리수동산
  • 경남일보
  • 승인 2015.02.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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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시인· 삼현여중 교사)
박종현
이십칠팔 년 전, 필자가 삼천포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봄방학을 맞아 고성 옥천사에 간 적이 있다. 옥천사 경내와 청련암 등을 둘러본 뒤 집으로 돌아올 무렵, 때 아닌 장맛비 같은 굵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옥천사에서 신작로까지 오들오들 떨면서 걸어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엉겁결에 길섶으로 비껴 주었는데도 계속해서 클랙슨을 눌러댔다. 화가 나서 한 입 가득 욕을 베물고 뒤돌아보니, 스님 한 분이 지프차 유리창을 내린 채 타라는 손짓을 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옷이 흠뻑 젖어 타기가 곤란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굵고 짧은 목소리로 그냥 타라고만 하셨다. 무뚝뚝한 인상을 가진 분이 이처럼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가 싶어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다. 삼천포까지는 태워줄 수는 없고 진주까지만 태워주겠다고 하셨다.

진주에 도착하자 스님께 저녁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하니 기꺼이 응해 주셨다. 저녁 식사를 할 때에사 스님의 존함이 승욱(昇旭) 스님임을 알게 되었다. 청련암에서 오갈 곳 없는 고아들을 모아 돌봐 주면서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를 키우는 ‘인재 불사(佛事)’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심지와 강단을 가지신 스님의 맑은 눈빛에서 자비로움이 넘쳐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스님을 다시 찾아뵌 적이 있다. 삼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맑고 자비스러운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으셨다. 그 사이 스님은 폐교였던 좌련초등학교에다 보리수동산을 열어서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다. 아이들과 함께 한라산부터 백두산까지 하이킹을 하기도 하고, 동해안 일주와 백두대간 종주 체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심어주기도 하셨다. 보리수동산에 독서실, 컴퓨터실, 상담실, 강당(실내체육관) 등의 시설을 마련함과 더불어 법당에다 피아노와 사물놀이기구들도 들여서 아동들이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애쓰셨다.

이처럼 스님은 아동들이 행복해하는 동산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애를 쓰고 계신다. 아동들로 하여금 이 세상 낮은 곳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하고, 온몸으로 불사를 행하시는 승욱 스님에게서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다. 아직도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온몸으로 수행하시는 종교인이 계시기에 이 세상은 아름답다. 그래서 보리수동산은 행복하다.
박종현 (시인· 삼현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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