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네덜란드 황금시대
[김준식의 그림이야기]네덜란드 황금시대
  • 경남일보
  • 승인 2015.03.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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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옮겨진 소소한 일상 풍경
발 그라벤 해자 위의 놀이(Die Freude des Eis auf dem Wallgraben)1618


네덜란드 황금시대란 네덜란드가 독립을 위해 스페인과 싸웠던 80년 전쟁 (1568-1648년)의 후반부부터 시작해 완전히 독립을 쟁취한 이후의 일정 시기지칭하는데 이 시기에 유행했던 회화를 특별히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회화’라고 부른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북부 중심의 새로운 네덜란드 공화국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당시 유럽의 무역, 과학, 그리고 예술의 새로운 영역이 북부 네덜란드 지방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영향은 완고한 남부의 카톨릭 지역(플랑드르 지역)에도 영향을 주어 남부 네덜란드는 또 새로운 양식의 회화를 탄생시키게 된다.

네덜란드 황금 시대 회화의 여러 유형 중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이 17세기 초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종류의 회화를 Genre painting(풍속화라고 번역된다)이라고 불렀다.

처음 풍속화의 주제는 여자들이 일하는 부엌의 모습이나 서민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와 그들이 모여있는 시장, 여인네들의 방과 그들이 하는 바느질이나 뜨개질 하는 모습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풍경을 그린 풍속화를 특별히 쁘띠 장르(petit genre; 작은, 또는 소소한 풍속화라는 뜻)라고 부른다. 이러한 쁘띠 장르는 이 시기 이전에는 회화의 소재로 선택되지 못했던 것으로서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쁘띠 장르와는 달리 중요한 역사적 상황이나 장면이 포함되어 있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암시하는 회화를 특별히 그랑 장르(grand genre; 거대한 또는 위엄 있는 풍속화)라고 부른다. 그랑 장르는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신화와 역사적 사건의 소재까지 더해져 18세기 이후 역사화(history paintings)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황금시대의 일상을 담은 풍속화 중 Esaias van de Velde가 그린 ‘발 그라 벤 해자 위의 즐거움 (Die Freude des Eis auf dem Wallgraben 1618)’은 쁘띠 장르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냥꾼의 귀환(Die Jager im Schnee)를 그린 Pieter Bruegel der Altere 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Esaias van de Velde는 1587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그의 스승은 그의 아버지와 Gillis van Coninxloo로서 두 사람 다 풍경화(풍속화의 경향이 가미된)의 대가들이었다. 벨데는 1612년 하를렘에 있는 St. Luke 길드에서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 부문에서 금메달을 휩쓴 네덜란드 선수들이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이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1618년의 그림이니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도 이미 그들은 얼어 붙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던 것이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언 강 위에서 과연 스케이트를 탔을까? 아마도 그 때, 우리 조상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 더 잘나고 못났다가 아니라 문화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 그림은 오크판 위에 그린 그림으로서 그 질감이 그림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벨데의 그림은 이러한 풍속화적 풍경화가 주를 이루는데 특별히 이 그림은 Dutch Golden Age(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풍속화 중 하나이다. Dutch Golden Age의 유명한 화가로서는 ‘루카스 반 레이덴’과 ‘피테르 아르첸’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림인 ‘행복한 술꾼’을 그린 ‘프란스 할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베르메르’, 또 마침내 그 정점에 있었던 ‘렘브란트 판 레인’이 있다.



다 허물어진 성곽 주위를 흐르던 해자(垓子;성 주위에 파 놓은 물길)의 물은 얼어 붙었고, 그 얼음판 위를 동네 주민들이 마치 스케이트의 초기 모델로 보이는 신발을 신고 신나게 얼음을 지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아이스하키 스틱의 원조쯤으로 보이는 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네덜란드는 지표면이 바다보다 낮기 때문에 내륙 수로가 잘 발달되었고 그 내륙의 수로가 얼어 붙으면 이런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졌을 것이다.



 
(와인 상인 길드의 수석 회원)Die hochrangige Mitglieder der Weinhandlergilde 1659


한 편 본격적인 그랑 장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쁘띠 장르와 그랑 장르의 점이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Ferdinand Bol이 그린 와인 상인 길드의 수석 회원(Die hochrangige Mitglieder der Weinhandlergilde 1659)은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격식을 갖춘 사람들이 특별한 의례를 치르고 난 뒤, 그것을 기념하고자 모여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이다.



Ferdinand Bol은 1616년 네덜란드 도르트레이히트에서 출생하여 1640년경 암스테르담에서 위대한 렘브란트 판 레인으로부터 사사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그림에서 렘브란트의 영향이 너무 강해 그의 작품들 중 일부는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오해 받는 작품도 있다. 1660년경부터는 점차 스승의 영향을 벗어나 밝고 우아한 프랑스 풍의 화풍으로 양식을 바꾸었다. 그는 풍속화 중 특별히 사람들의 표정을 중심으로 그렸는데 이 작품에서는 길드 수석 회원 7명의 초상화를 한 화면에 배치했다.



서 있는 사람을 기점으로 전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는 7인은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와인 길드의 수석 회원들이다. 17세기 중엽, 유럽인들에게 와인은 깨끗하지 못한 음용수의 대용품이었다. 따라서 와인은 술이라기보다는 생필품에 가까웠고 13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된 포도 재배 기술 탓에, 북위 60도 이하 유럽 전역에서 포도가 생산됨과 동시에 포도주 또한 생산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포도주를 장악하고 있는 상인 길드의 대표자들이니 위세가 대단했을 것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주역으로서 당시 유럽의 중심부를 장악했던 이들의 위풍 당당한 모습을 Ferdinand Bol은 그의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시선이 화가와 마주한 사람은 세 명뿐이고, 나머지는 각기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이미 상당한 재력과 그로부터 생긴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긴 시간을 앉아 있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을 그리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요즘으로 본다면 기념촬영과 유사한 행동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바로 그랑 장르의 핵심 주제라고 볼 수 있다.

곤양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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