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하는 생각
혼자서 하는 생각
  • 경남일보
  • 승인 2015.03.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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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수필가·박물대학연합회 부회장)
이홍식

만약 사람들이 말하는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삶과 죽음이 항상 내 곁에 있는 것처럼 천당과 지옥이라는 것도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내 마음 안에 있는 게 아닐까요. 흔히 우리는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땐 사는 게 지옥이란 말을 하지요.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로 그게 지옥입니다. 지옥이 별것인가요.

오늘 아침 봄비가 내렸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에는 실비로 변해 우산을 쓰지 않은 내 얼굴을 간지럽게 합니다. 길 건너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쓰레기봉투 옆에 버려진 밀감을 상한 쪽은 골라내고 나머지를 먹고 있었고. 버려진 종이컵에 남은 커피를 마시려고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아침에 얼마나 배가고프면 저럴까요.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 집에 있던 과자와 사과를 봉투에 담고 약간의 돈을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최소한의 허기는 달랠 수 있을 겁니다. 입은 옷과 손이 때에 절어 사람행색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렇게 힘들어 어쩌나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람은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까요. 그이의 심정이 어떨까 괜히 내가 궁금해집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TV를 보다 설날 차 안에서 어린 자식 둘을 칼로 찌르고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자식과 아내를, 그것도 흉기로…. 진저리 치는 일입니다. 그것을 보다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는 게 얼마나 지옥 같았으면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아마 오늘 아침에 본 그 사람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볼일 보러가며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 사람을 보았습니다. 내가 준 것으로 아침을 때우고, 담배를 피우는 시간, 그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마음은 천국에 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옛말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보았던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생각과 눈높이에 맞춰 저 사람은 지독하게 불행할 거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이 같은 마음은 내가 교만할 때 어김없이 생기는 고질병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분별 없이 하면 되는 것을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도 아니지요. 내가 만든 잣대로 상대를 재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는 못난 생각입니다.

이홍식 (수필가·박물대학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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