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 로코코의 빛과 그림자
[김준식의 그림이야기] 로코코의 빛과 그림자
  • 경남일보
  • 승인 2015.03.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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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의 이면에서 닳아빠진 삶을 주시하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초상(Portrat der Marquise de Pompadour,1756)
18세기 프랑스의 루이 15세의 치세(1715~1774)와 거의 일치하는 Rococo 시대는 Rocaille(로카이유)에서 비롯된 말이다.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사이의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유행한 이 양식은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미술 전체에 널리 영향을 주었다. 직선을 싫어하고 휘어지거나 굽어진 정교한 장식을 애호하는 점에서는 바로크와 유사하나, 바로크에 비해서 로코코는 좀 더 우아하고 경쾌하며 이국적인 시누아즈리(중국풍)의 경향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로코코의 번영은 짧았다. 그 이유는 사실 로코코 내부에서 생겨났는데 로코코 최대의 향유자였던 왕족과 귀족들 스스로 로코코의 지나친 장식의 권태로움으로부터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간결하고 원칙적인 고대 그리스로의 회귀였다. 이런 흐름을 이끈 장본인은 독일 출신의 Johann Joachim Winckelmann(요한 요하임 빙켈만)이었는데 그는 로코코가 정점이었던 1756년 ‘그리스 예술 모방론’을 발표하여 예술의 본질을 고대 그리스의 이성적 고귀함이라고 주장하며 유럽예술의 방향을 로코코에서 Neo-Classicisme(신 고전주의)로 흐르게 했다.

Francois Boucher에 의해 1756년 그려진 Portrat der Marquise de Pompadour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로코코 회화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배경은 실내다. 한껏 멋을 낸 후작부인 뒤에는 정교한 로코코 장식을 한 거대한 거울이 있다. 그녀가 살았던 베르사이유 궁전은 거울의 궁전이라 할 만큼 각 방마다 거울이 많이 놓여 있다. 거울에 비친 퐁파두르 부인의 뒷머리 모양은 ‘퐁파두르’라는 이름을 가진 헤어 스타일의 하나로 정착될 만큼 유명하다. 그녀의 옷은 화려함의 극치다. 치맛단, 옷깃마다 장미꽃을 비롯한 화려한 꽃이 피어있고 손목에는 5줄의 진주팔찌가 있다.

이즈음의 귀족이나 왕족들의 초상화에는 자신들의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늘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곤 했는데 역시 이 그림에서도 책을 들고 있다. 하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다른 여인들의 장식적 의미의 책에서 벗어나 실제로 학문을 좋아했고 장려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계몽사상과 백과전서 파에 심취하여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 다양한 편찬사업을 실제로 주도하기까지 했다. 거울에 비친 서가의 책과 바닥에 뒹구는 문서들이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듯하다.

부세는 파리 출생으로서 궁정화가가 되어 퐁파두르의 총애를 받아 화단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주로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요염한 여신의 모습을 그렸고, 또 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우아한 풍속과 애정 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특히 물체에 반사된 빛의 묘사에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이 그림에서도 섬유의 구겨짐과 질감이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실내의 빛을 반사시키는 저 풍성한 치마를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청난 압박의 코르셋을 착용했을 것인데, 그 때문인지 후작 부인의 표정은 밝고 화사하기 보다는 살짝 굳어 있다. 궁정의 엄숙함 때문인지 신체 노출은 자제하고 가능한 화려함과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이상적인 관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당시 궁정의 다른 여인들이 오로지 왕의 총애를 바라면서 삶을 소진한 것과는 달리 퐁파두르는 정치 문화적인 활동으로 보통의 궁정 여인들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음을 상징한다. 그녀의 예술적 영감으로 탄생한 프랑스의 세브르 도자기의 붉은 빛을 ‘퐁파두르 장밋빛’으로 부를 만큼 색채감각도 뛰어 났다. 시대를 앞서가는 그녀의 이상주의자적인 모습을, 부세는 그녀의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세의 이 그림이 그려진 뒤 불과 30년도 채 흐르지 않아 유럽 예술은 신 고전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로코코의 지나친 화려함에서 오는 피로감과 빙켈만이 주장한 고대 그리스 예술로의 회귀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였을 것이다.



 
Der Griechische Priester 1782


1782년 Francois-Andre Vincent가 그린 Der Griechische Priester(늙은 그리스 수도사)는 바로 이 신고전주의의 시작점에 위치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신을 섬기는 사도로서의 기품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깊이를 읽을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말의 시인 ‘사공 도’가 저술한 ‘이십사시품’ 중 飄逸(표일)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高人惠中(고인혜중) 고고한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을 사랑하고, 古鏡照身(고경조신) 오래된 거울에 또 스스로를 비춰보네.’

머리 위, 마치 신의 은총인 양 내리 비치는 희미한 광선은 수도사의 흰 머리카락과 수염에 닿아 놀랍게도 흰 머리카락과 수염에 생기를 부여한다. 깊고 굵게 파인 그의 이마 주름 속에서 살아온 날들의 깊이가 숨어 있다. 여전히 윤기 있는 이마와 콧등으로 흐르는 유려함, 강건함은 그가 살아온 세월이 매우 단단했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고대 그리스 예술로 돌아가려는 신 고전주의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내려 보는 그의 시선에서는 왠지 서글픔과 회한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눈 밑으로 거무스름하게 쳐져 있는 피부, 젊은 시절 붉게 빛났을 테지만 이제는 붉은 빛을 잃은 입술이 빛의 영향으로 희미해지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지혜를 보여 준다. 그의 얼굴에서 읽히는 서글픔은, 이를테면 그의 삶에 대한 지극한 반성의 흔적이 아닐까.

그의 어깨 위에 보이는 옷깃은 끝 부분이 닳아 오랜 세월 그와 함께 보내왔음을 말하고 머리에 쓴 검은 모자의 끝도 빛의 반사에 얼핏 갈색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모자 또한 오랜 세월 수도사와 함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이것은 수도사로서의 삶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고 동시에 18세기 당시 기층 민중의 삶 역시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신 고전주의의 바탕에는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계몽주의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로코코가 귀족들의 우아하고 화려한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신 고전주의는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민중의 삶과 애환에 시선을 돌려 감성보다는 합리적 이성에 기초하는 예술적 경향이었던 것이다.

수도사의 종교가 그리스 정교이거나 아니면 로마 가톨릭, 또 아니면 개신교든 그것은 이 그림에서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늙은 수도사의 희미한 얼굴을 통해 18세기 말 유럽 민중들의 굴곡진 삶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 예술로 회귀하고자 하는 신 고전주의의 이념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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