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단성소와 정관정요
[교단에서] 단성소와 정관정요
  • 경남일보
  • 승인 2015.03.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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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3월이면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학급 반장이나 전교 회장을 뽑는다. 근자에 반장과 학생회장 선거가 가열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진학을 위한 스펙과 자기계발에 도움과 계기가 되겠지만, 한 자리 하려는 어른들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이런 양상에서 과연 지도자와 참모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1555년에 51세의 진주 선비 남명 조식에게 어린 명종은 단성현감을 제수했다. 몇 차례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던 남명은 사직소를 올렸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단성소(丹城疏)이다. 남명은 “관원의 파당과 사욕, 왕권의 무력함, 외척의 횡포 등으로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면서 ‘나랏일은 이미 잘못됐고, 근본은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반(離反)되어 큰 고목나무를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파먹어 진액이 말라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이라 정국을 평하면서 왕을 ‘고아’로, 대비를 ‘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참으로 섬뜩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중국 당태종 이세민의 치세를 기록한 ‘정관정요’에 “군주가 자신이 성군 또는 현군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생각에만 의지한다면 신하들은 군주의 과실을 바로잡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그대로 되지 않아 군주는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망국의 신하 또한 자기 집안을 보존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신하의 간언이 없는 것을 나무라면서 “근자엔 내 명을 따라 비위 맞추기에 급급할 뿐이구나. 내 말에 동의한다는 서명과 그 문서를 공포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참으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랬기에 그의 치세는 후대 중국의 역사·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학기 임기의 학급 반장과 1년 임기의 전교 회장, 그리고 임기 5년이나 4년의 선출직과 근자에 당선된 많은 조합장들께도 한마디 한다. “임기는 당선자의 공약을 실천하고 구성원에게 헌신과 봉사하는 기간이지, 결코 군림의 시간이 아닙니다.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임기도 잠시일 것입니다. 수령이 천년 된 나무나 목테 열 개를 두른 거북이가 우리 인간을 얼마나 한심하게 보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아집만으로 날뛰는 모습을 보면 혀도 안 차고 싶을 것입니다.” 아, 남명 같은 신하(참모)와 당태종 같은 지도자(단체장)는 진정 이 시대에는 없는 것일까?

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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