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그림이야기]풍자의 해학과 날카로움
[김준식의 그림이야기]풍자의 해학과 날카로움
  • 경남일보
  • 승인 2015.03.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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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궁색한 삶이라니… 그 속에 해학이 웃는다
 
칼 스피츠베그(Carl Spitzweg)가 그린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 1839)’


풍자라는 말은 중국의 ‘시경(詩經)’에 처음 등장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풍화(風化-교육이나 정치의 힘으로 풍습을 잘 교화하는 일)하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풍자(風刺-결점을 빗대어 공격하는 것)하는데 “이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 라는 대목이 있다.

어떤 사회에 풍자가 유행하게 되는 것은 그 사회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19세기 유럽은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특히 1830년대에 독일 사회는 낭만주의가 사라진 곳에 유럽에서 가장 늦게 산업화의 광풍이 몰아쳤다. 즉, 낭만주의적 이상향이 실종되고 기계에 의하여 인간의 생활이 지배되는 산업화 시대가 된 것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 구조에 익숙해 있던 독일 민중들에게 산업화는 그들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대 사건이었다.

칼 스피츠베그(Carl Spitzweg, 1808~1885)가 그린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 1839)’은 이 시기 독일 민중의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하지만 풍자의 날카로움 속에 묘한 해학(諧謔)도 있다. 비가 오는 날을 대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우산이 방에 펼쳐져 있다. 아궁이에는 종이 뭉치가 던져져 있지만 불을 피운 것 같지는 않다. 하여 늙은 시인은 냉기를 이기기 위해 머리에 여전히 나이트 캡을 쓴 채 이불을 덮고 두터운 잠옷을 입고 있다. 잠시 깃털 펜을 입에 물고 뭔가를 계산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안경을 바로 썼는지 거꾸로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잉크 병을 기울여 놓아도 잉크는 병 바닥 모서리에 겨우 고여 있는 정도다. 외출용 모자를 연통에 걸어 놓은 것으로 보아 불을 지피지 않은지는 꽤 오래된 모양이다. 정말 궁상 그 자체다.

천정에는 계단이 불쑥 내려와 지하인가 싶지만 작은 창으로 햇빛은 비추고 있으니 반 지하쯤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방안에 빨랫줄이 있고 구멍 난 손수건이 걸려 있다. 난로 옆으로 간이 소변기가 잘 숨겨져 있고 벽에 기댄 지팡이, 한 쪽 뿐인 단화와 이상한 도구로 보아 어쩌면 시인은 한 때 전장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어 거동이 불편한 상이군인일지도 모른다. 평소 즐겨 하던 술도 이제는 다 떨어져 빈 병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하지만 가난한 시인은 오늘도 열심히 책을 보고 시를 쓰고 있다.

그림을 그린 칼 스피츠베그(Carl Spitzweg, 1808~1885)는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스피츠베그는 낭만파의 갈래인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화풍과 프랑스의 바르비종 화풍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비더마이어(Biedermeier)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의 그림은 낭만적 이라기 보다는 매우 실리적이며 소 시민적 삶을 주로 표현했다.

그림에 표현된 가난과 불편함에도 왠지 시인의 표정은 크게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특유의 해학적인 요소와 시적 운율(예를 들면 거꾸로 안경을 쓴 시인의 표정과 벽 여기저기에 보이는 낙서)을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림 곳곳에 배치해 놓음으로써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계속 생겨날 것 같은 분위기다. 산업혁명 초기, 독일 민중들의 참담함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 화풍에서 묘사되는 민중의 삶처럼 절망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화폭에 옮겨진 조롱은 철옹성에 갇힌 소시민의 아우성

그런가 하면 19세기 프랑스도 18세기 혁명의 폐해가 여전히 유지되면서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이 시기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풍자한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1808 ~ 1879)가 있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근대 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격찬할 만큼 그가 근대 미술사에 남긴 영향은 크다. 드라크루와로부터 시작 되는 윤곽선의 생략(인물과 사물의 세밀한 묘사로부터)이 도미에에 이르러서는 좀 더 과감해진다. 윤곽의 묘사에 있어 거의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굵고 강렬한 표현 방법은 훗날 야수파 화가인 조르주 루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도미에의 돈키호테(Don Quijote, 1868)는 사물의 구체적 부분이 생략되어 회화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붉은 색으로 칠해진 얼굴에는 눈, 코, 입의 윤곽조차 없다. 희고 굵은 선으로 묘사된 사물들에서 묘한 강렬함이 느껴진다. 말라 비틀어진 명마 로시난테를 굵은 선으로 묘사하니 어쩐지 기괴한 느낌조차 든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주인공은 윤곽으로 보아 방패와 창을 들고 어깨가 강조된 갑옷을 입었지만 전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말의 앞 다리 때문에 약간 불안한 기운마저 느껴지는데 그가 바로 돈키호테다.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인 스페인 중·남부 고원지대, 라만차 지역 특유의 맑고 건조한 기후를 보여 주듯 하늘은 검푸르다. 거친 붓 터치로 검푸른 하늘이 더욱 강렬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한 붉은 색 돈키호테의 얼굴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도미에는 1808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가난함 때문에 이렇다 할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830년 시사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 : 캐리커처의 프랑스식 표현)’의 풍자 만화가로 데뷔하여 만화가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국왕을 모독한 죄로 실형을 받았고 잡지도 곧 폐간되어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속이 좁은 모양이다.

중세 영웅의 환상 속을 헤매는 주인공 돈키호테를 묘사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도에 대한 풍자다. 1615년에 책이 출판되었으니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중세의 그림자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강력한 주제는, 소설 돈키호테의 풍자적 모티브를 빌려와 19세기 말, 근대의 새로운 흐름을 여전히 거스르는 프랑스 귀족 세력들의 몽매함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지친 일상을 거친 붓질로 대담하게 그려낸 도미에의 회화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한 휴머니즘이 배어 있다. 그의 그림 “삼등열차”에서는 중심으로부터 유리된 민중의 고단한 삶과, 그곳에서 발견되는 ‘소외’와 ‘무관심’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다.

/곤양고등학교 교사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가 그린 ‘돈키호테(Don Quijote,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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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구야 2015-03-26 13:24:02
좋은 그림에 좋은 평,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