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서울살이가 시작됐습니다. 당장 부딪힌 애로사항이 말이었습니다. 에나 진주말에 묻혀 살던 촌놈이 물건 사려고 서울사람과 얘기할 때마다 눈을 멀뚱거리며 ‘이게 무슨 얘기야’ 하는 듯이 쳐다보는 표정을 보면 진땀이 솟았습니다. 서울에서 소통하려면 진주말을 표준말로 즉시 통역해서 말하고, 말끝은 올려야 했습니다. 보통이면 ‘니, 우짤라고 그랬노?’ 할 것을 ‘너, 어쩌려고 그랬니?’로 즉시 바꿔 얘기해야 하니 참 어색했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방학에 고향에 가면 친구에게서 “야, 니 말투가 그기 뭐꼬!”하는 핀잔을 들어야 했고, 방학이 끝나면 고달픈 서울살이가 되풀이됐습니다.
촌놈의 또 다른 어려움은,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잘 없었습니다. 서울 출신들은 친·인척이 많아 과외도 좋은 조건에 잘 구하고, 집에서 다니니 하숙이나 기숙사 걱정을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방학이 돼 기숙사에서 나가야 할 때는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과외를 끝내고 가야 하는데, 어디 묵을 데가 없었으니 선배 하숙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돈도 없어 굶은 적도 많았었죠. 그때는 진주에서 서울로 오는 학생이 꽤 많았습니다. 진주고등학교에서만 200여 명은 된 것 같으니 각 학교를 다 합하면 훨씬 더 많았을 겁니다. 요즘은 다 합해도 몇 명되지 않는다고 걱정스럽게 얘기합니다.
지난 3월 20일, 뜻 있는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류해성 현 재경진주고 동창회장이 주도해 ‘남강포럼’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진주고는 물론이고 대아고, 동명고, 진주기공, 진주여고 등 모든 고등학교 출신과 진주에 가까운 고향을 둔 진주지역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기에는 기업인, 전·현직 공무원, 교수 그리고 의사, 변리사,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가도 참여합니다. 송희영 건국대 총장이 포럼대표를 맡았습니다.
지역모임은 서로 쉽게 친해 쉽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끼리 교류와 정보나눔이 먼저겠지만, 점차 자리를 잡으면 진주사람이 서울로 올 때 정보를 주고, 진주를 서울에 알려 고향에 도움이 줄 수 있는 모임으로 컬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만나는 진주 사람들, 참 반가웠습니다.
고영회 (대한변리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