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
출판기념회
  • 경남일보
  • 승인 2015.03.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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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 (시인)
양곡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책 한 권 분량만 글을 쓰겠다고 했었다. 벌써 세 번째 시집을 냈다. 책을 낼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한다. 나의 첫 시집은 출판을 해준 분이 출판기념회까지 열어 주었다. 많은 분들에게 초대장을 돌렸다. 그때는 그런 일이 여러모로 뜻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올 들어 세 번째 시집을 내면서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하자면 오늘날 열리는 개인 출판기념회는 좀 넉넉지 못한 표현이기는 해도 팔리지 않는 책을 강매하는 행사이기에, 누군가에든 부담을 주는 일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영 마뜩치가 않아서였다. 출판기념회의 본뜻은 잘은 몰라도 지은이가 온 힘을 들여 쓴 책의 출판을 스스로 기념하며 가까운 지인들과 자축을 함께하는 자리일 터인데, 어느 세월에 장사 수단으로 변질된 데 대한 심한 모멸감을 느껴 나 혼자만이라도 출판기념회를 본래의 순수함으로 돌려놓고 싶어서였다.

문학작품을 밤낮 창작하는 전업 문인들이야 별수 없이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라도 열어 창작현장에서든 출판기념회에서든 한 권의 책이라도 팔기 위해 그들끼리 상부상조하는 잔치를 벌이는 것쯤은 십분 이해한다 치더라도, 입신의 야망이나 출세의 정책 같은 선언문을 출판해서는 공공연히 모금을 하는 출정식 같은 출판기념회야말로 순수성 그 자체를 모독하는 것만 같아 생각만 해도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오늘날은 인쇄매체가 발달해 무슨 글이든 한 권의 책으로 묶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 만큼 내용이 좋은 책을 잘 펴내 세상에 널리 알리기에는 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긴 행사가 출판기념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출판기념회는 풋풋하고 아름다운 순수성을 잃고 돈만 생각나게 하는 상업적 판매행사로 변질되고 있어 입 안이 쓰다. 어떤 부류의 출판기념회는 공공연한 자금 모금행사로 변질돼 버렸다. 이런 마당에 세 번째 시집을 냈다고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것은 참으로 낯이 두껍거나 세상에 대한 염치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나만이라도 출판기념회를 아예 갖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선후배 동료들의 따뜻한 격려와 정겨운 마음까지 저버리는 것은 또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모이는 곳마다 식사나 한 끼 같이하자며 시집을 서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양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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