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꽃의 주소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꽃의 주소
  • 경남일보
  • 승인 2015.03.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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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디카시

 

<꽃의 주소> -반칠환


식구들 발길에 채일 때는 끄떡없더니
일가족 떠나고 나니 오히려 문턱이 허물어지네
나부끼던 공과금 고지서도 끊긴 지 오래
담장에 번지수는 하릴없이 선명하다 하였더니
봄마다 벌 나비 배달부 찾아오는 꽃의 주소였네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한에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구조물의 물리적 균열을 사람의 기가 메운다는 것은 꼭 풍수학이 아니더라도 예로부터 전해지던 우리네 믿음이었다. 외진 곳의 집들이 주인을 잃고 쉽게 허룩해지는 풍경들에서 옛 믿음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인은 허물어지는 문턱 앞 콘크리트 바닥에 어울리지 않게 들러붙은 저 꽃다발에서 이 집의 새 주소를 읽는다. ‘사람의 번지’가 지워진 자리에 ‘새 번지’가 매겨진 셈이다. 고정된 시선을 비틀어 대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포착하는 시인의 눈이 이 집 한 채를 거뜬히 살려냈다. 올 봄엔 저런 ‘꽃번지’를 찾는 ‘벌 나비’들의 날갯짓이 분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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