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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14>고창 방장산홍길동의 산, 지금은 고단함 품는 힐링의 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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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6  22: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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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방장산


‘방등산가(方等山歌)’는 백제 후예들의 노래다. 혼란스러웠던 신라 말 방등산에는 도적과 산적들이 들끓었는데 이들은 산 아래 마을로 내려와 분탕질한 뒤 양민과 부녀자들을 산으로 끌고 갔다.

장일현의 한 여인도 이 도적들에게 끌려갔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자 이를 한탄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표현’이거나 아니면 ‘천하에 의리 없는 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 노랫말은 당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노래가 있었다는 사실만 고려사악지에 전한다.

방등산은 전북 고창과 전남 장성에 걸쳐 있는 방장산의 옛이름, 산지가 넓고 깊은 암릉이 있어 도적들이 은거하기 좋은 곳이었다. 실제 그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장동굴을 비롯해 기암괴석 암릉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훗날 의적 홍길동도 갈재와 이 산 일대를 주 무대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홍길동 생가와 테마파크는 이 산 남쪽 그의 고향인 장성 아곡리 아치실에 있다. 옛날 이 산은 도적의 산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애환과 굴욕의 대상이었던 방장산은 이 시대를 사는 고단한 사람들의 힐링명소가 되고 있다. 주말이면 많은 산객들이 찾아오는가하면 최근에는 산악자전거길이 개설돼 산속에서 은륜의 잔치가 펼쳐지고, 하늘에는 형형색색 패러글라이더가 날아다닌다. 산기슭을 돌아가는 둘레길은 아버님들의 트레킹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산은 모름지기 시기에 따라 용도와 목적을 달리하며 사람 옆에 그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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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 종주구간 중 수시로 나타나는 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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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대부근에서 본 쓰리봉 방향 산세, 더 멀리 보이는 산은 입암산을 비롯한 국립공원 내장산영역이다.


▲산행은 장성갈재에서 시작해 쓰리봉→서대봉→방장산→벽오봉→방장사→양고살재까지 종주하는 것이 기본이다. 거리 8km에 휴식 포함 6시간이 소요된다.

▲오전 9시 26분, 홍길동의 무대 장성 갈재에서 출발한다. 노령이라고도 불리며 해발 280m의 높이에 있는 전북과 전남을 잇는 고개다. 갈재를 넘어야 진짜 호남이라 할 정도로 전남·북의 생활풍습 문화 언어가 달랐다.

조선 연산군 때 장성군 아곡리 아치실에서 태어난 홍길동은 서얼 신분으로 인해 관리가 되지 못하고 이 산 일대에서 의적활동을 했다. 주로 탐관오리와 토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줬다. 도내 하동 화개와 진주까지도 세력을 펼쳐 관군과 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년에 가혹한 국문(鞠問)으로 비운의 세상을 떴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실존인물 그가 죽은 100년 후 쓰인 최초의 한글소설로 경판본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산 입구는 일반 차량통행을 제한하기위해 철제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다.

100m정도 오르면 ‘쓰리봉 1.8km’ 이정표가 나오고 오른쪽 산으로 향한다. 직진은 산허리를 도는 둘레길과 자전거길이다.

오전 10시, 첫 번째 이름 없는 작은 봉우리(511m)를 오를 때는 그저 그런 평이한 산이다는 느낌이다. 뒤편에는 호남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이 들려온다.

이 봉우리에 예비군들의 진지로 활용하고 있는 성터가 있고 그 모롱이를 따라 돌아 잘록한 안부로 내려선다. 이른 아침부터 힘들게 오른 고도를 순식간에 까먹으며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한시간동안 고도를 끌어올리면 쓰리봉(734m)이다. 함안 여항산을 갓데미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다.

봉우리주변 우뚝한 암괴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발아래 고속도로 너머 내장산 영역의 첩첩한 산 실루엣이 선명하다. 이정표는 방장산 3.4km가리킨다.

바위들이 드센 암릉 사이로 데크로 등산로를 조성해 걷는 데는 불편은 별로 없다. 봉우리가 있는 곳마다 날카로운 바위들이 진열돼 수석전시장 같다.

서대봉(675m)역시 바위지대로 구성돼 있으나 표지석이 없고 누군가 비닐로 싼 종이에 서대봉이라고 새겨놓았다.

산에는 꽃이 피었다.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을 앞두고 산수유를 닮은 생강나무가 제일 먼저 노란 꽃잎을 피웠다. 다람쥐 청설모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뛰면서 산객을 희롱한다. 재빠른 행동으로 잠시도 촬영기회를 주지 않는 맹랑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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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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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사.


휴식과 점심을 해결한 뒤 오후 1시 15분에 자리를 떠 용추곡 용추폭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통과한다.

용추계곡은 이 산에 있는 4개의 계곡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이다. 20m에 달하는 용추폭포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흔한 전설이 있다. 이 갈림길에서 다시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한다.

715m높이에 있는 봉수대. 뒷편 지나온 산들의 풍경, 아직 움을 틔우지 않은 갈색 산의 알몸을 드러낸다. 가야할 산세는 부분적으로 위치한 암괴와 함께 자연적 조화를 이룬다. 사진촬영의 포인트가 되는 지점으로 일행을 먼저 보내고 사진을 촬영한 뒤 또 뒤따르면서 시간이 지체된 구간이다.

오후 1시 40분, 방장산 정상. 방등산 반등산이라고 부르는데 예부터 무등산 지리산과 함께 전라도 3대 영산으로 받들어 왔다.

동쪽에 국립공원 내장산과 입암산 백암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서쪽에는 도립공원 선운산영역에 청룡산과 소요산이 위치하고 있다. 양쪽에 펼쳐지는 그야말로 일망무제. 이 산 바로 아래에는 고인돌의 고장 고창군.

종주능선은 서쪽 능선 억새봉으로 이어진다. 억새봉은 과거 억새가 많았으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들어서면서 잔디가 깔려 있다. 주말이면 고창의 하늘을 향해 몸을 던지는 글라이더들의 오색향연이 펼쳐진다.

벽오봉을 지나 하산 길,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에 도적굴로 불리는 방장동굴이다. 입구는 삼각형 모양으로 좁아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지만 내부는 넓어 20여명이 들어갈 수 있다. 산적들의 은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몇년 전에는 이곳에 산돼지가족이 살고 있었다. 추위을 피하고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를 모르고 다가갔던 등산객이 기겁한 예도 있었던 모양이다.

산행 후 원점회귀를 위해 이용했던 택시기사는 방장동굴 산돼지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자신을 ‘고창을 말하다’ 저자라고 소개했다.

무너머재 갈미봉 방장사를 거쳐 오후 3시 30분 양고살재에 도착한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방장사는 바위 아래 지어진 작은 암자. 입구에 물을 구할 수 있는 수조가 설치돼 있고 연세 드신 보살이 정진하고 있다.

양고살재는 1636년(인조 14)병자호란 때 고창 출신 박의장군이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 청의 누루하치 사위 적장 양고리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원점회귀를 위해 장성갈재로 가기위해서는 고창읍의 택시를 불러야 한다. 택시비는 2만8000원.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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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탈바꿈한 억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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