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목마
트로이의 목마
  • 경남일보
  • 승인 2015.03.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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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문정임

새봄이다. 새 학기 나도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첫날 각자 자기소개를 하였다. 외둥이, 조손가정, 다문화가정은 이제 흔한 가족구성 형태다. 아름이와 다름이는 자매 간이지만 전혀 다르다. 밝고 똘똘한 아름이는 10분 먼저 난 쌍둥이 언니고, 같은 3학년인데도 손가락을 빨고 있는 다름이는 말이 어눌하고 발음도 분명치가 않은 동생. 어머닌 필리핀에서 오셨다고.

흔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언어발달이 늦고 학습 진도도 느리고 인간관계 맺기도 서툴러 자꾸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 쌍둥이를 통해서는 너무도 다르게 나타나 일반적인 현상을 달리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겨 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로 좋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무척 반가웠다. 자매에게 외가에 가 보았냐니까 어렸을 때 거기서 먹어 본 노란 과일즙 단맛은 너무 특이한 맛이었다면서 즐겁게 필리핀을 추억했다.

먼 옛날 그리스가 트로이와 10여년이란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도 승부가 나지 않자 목마라는 전략을 쓴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트로이 군대가 자기 진영으로 스스로 옮겨 준 목마 덕분에 말 안에서 나온 병사는 굳게 닫힌 성문의 빗장을 풀고 아군 그리스 군대를 불러들여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제 우리에게도 글로벌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할 전사들이 속속 목마 속에서 태어나고 있고, 지금 내 눈앞에도 앉아 있다. 정녕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교포 2세들이 한국어를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한류가 온 세상으로 퍼져 가기를 바라면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자기 엄마나라의 언어를 쓰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하고, 그 문화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간접차별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원진이 엄마 김타마라에게 할머니께서 우즈벡어로 ‘라흐맛’하고 고마운 인사를 하면 좋겠다. 우리 동사무소에도 따갈로그어 강좌가 생겨서 아름이 엄마가 ‘마라밍 살라맛’하고 감사인사를 가르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쌍둥이는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쓰면서 두 나라의 다리 역할을 할 미래를 자부심이 가득 찬 얼굴로 꿈을 꿀 수 있게….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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