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육총림(何育叢林)
하육총림(何育叢林)
  • 경남일보
  • 승인 2015.05.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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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문정임
전교생 독후감 발표대회가 있다 해서 정장을 갖춰 입고 학교엘 갔다. 발표대회 후 소감을 말하고 난 뒤 아이들과 좀 더 친해진 느낌을 안고 방과후 수업을 진행했다. 첨삭지도를 하고 반대쪽으로 돌아와서 아름이 공책에 빨간 펜을 대려고 하는 찰나 내 저고리 뒤쪽을 끌어당기며 묘한 표정으로 “선생님 이 옷 입고 오지 마세요” 한다.“왜?”, “이 옷 다 보이잖아요” 한다. 마 소재 니트 스웨터가 신축성이 없어서 엎드려 첨삭할 때 가슴이 드러나니 제가 민망하고 무안해서 내 친구 톤으로 알려주었던 것이다. 일부러 보이려고 한 건데 하며 눙치고 얼른 슬쩍 넘어갔지만 놀랐다.

열 살짜리라고 아이들이 마냥 어리기만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지만 그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또는 대충 가르치는지, 정성을 다하는지…. 그래서였던가, 신영복 선생은 ‘소년을 대하는 일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그 완전한 하나의 개체는 온 우주를 자기 안에 다 담고 있다. 서서히 규모가 커져가는 것일 뿐.

온갖 오욕으로 물든 손으로 출석부에 사인을 할 때, 볼 것 못 볼 것 다 본 눈으로 그들의 두 눈과 마주칠 때 나는 떨린다. 미사를 드리기에 앞서 손끝에 성수를 찍어 내 죄를 씻고자 하는 일 못지않게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 아이들을 잠시라도 내게 맡겨주신 생명의 주인께 행여 알건 모르건 나라는 허릅숭이가 몹쓸 짓을 하고는 있지나 않은지, 그들의 날이라 칭한 오월 오일 단 하루가 아닌 모든 날 나는 기쁘면서도 두렵다.

그러나 초등 1학년짜리가 설날 뜨거운 떡국이 친척들과의 불화를 풀어주기 때문에 먹는 것이라는 새로운 세시풍속의 유래를 대기도 하고, 학과 공부는 지지리 못하는 녀석이 두류 높은 산에 올라 산이 아니라 삼천포 앞의 바다를 보았다는 심오한 진리를 깨우쳐 주기도 할 때가 있어 또 다른 기쁨에 떨기도 한다. 커다란 상수리나무도 한 알의 도토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오늘도 잊지 않으려 애쓰며 예의 그 아름이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나는 카드를 쓴다. 정말로 고마웠다고….

글자공부이자 마음공부이고 예의범절의 수련이고, 우편엽서가 도착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통합교과 독서논술, 글쓰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마음에 또렷이 문신을 새기기에.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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