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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43)<104>경남지역의 문인 등단50주년 기록자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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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5: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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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김춘수(1922- 2005) 시인도 등단 50주년을 기록한 시인이었다. 김춘수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거치는 문단의 공식적인 등단 과정을 거친 사람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추천과정을 거치지 않은 문인에 속한다.

그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35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중학)에 입학, 1939년 5학년때 자퇴하고 1940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했다. 이 일본대학은 진주의 시인 설창수 부부가 다닌 학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42년 일본의 가와사키 부두에서 일본 천항과 총독정치를 비방하여 불경죄로 세다가야 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1946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 1948년까지 근무했다. 1949년 마산중학교 교사로 전임하여 1951년까지 근무하였다.

이 무렵에 김춘수는 문단 등단의 절차 없는 절차를 밟는 시기였다. 통영중학 재직시절 1946년 8월 광복1주년 기념 사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기록이 될 뿐이지 실제 시인으로 인정받기까지는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첫시집 ‘구름과 장미’(행문사, 1948)가 명실공히 그의 등단 시집이고 그때가 등단이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춘수는 1998년에 등단 50년을 기록한 것이 되고 그로부터 7년후 작고함으로 총 등단 57년을 기록한 것이다.

김춘수가 공식 등단 코스를 밟지 않았지만 청마 유치환의 문단 안내로 문단권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유치환은 김춘수의 첫시집 ‘구름과 장미’에 서문을 붙였다. 말하자면 청마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서’에 “여기에 새로운 한 시인을 우리가 얻게 됨은 우리 겨레가 진실로 의로운 겨레임을 신이 스스로 증거하여 주심이라 비록 이날 아침 춘수의 노래가 서투르다 할지라도 이것으로 그의 전부를 값치는 부당은 누구도 행할 수 없으리니 언제나 우리는 그 시인의 첫 홰울음 소리를 통하여 그의 앞날을 정당히 측량하고 아껴야 하리라” 라 하고 있다.

청마는 김춘수의 등장을 광복기 우리 겨레의 의로운 소득임을 암시해 준다. ‘의롭다’는 것이 김춘수 시의 무슨 민족주의적인 데가 있다거나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라거나 하는 그런 의도로 쓰인 말이 아니라 광복의 환희 앞에 모든 문화적인 움직임은 모두 겨레 앞에 유산이라는 뜻으로 쓴 듯하다. 이를 보면 유치환은 김춘수의 문단적 대부로 자임하면서 그를 이끌어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청마는 그러면 어떤 이유로 김춘수의 문단적 대부를 자임했던 것일까? 김춘수가 그의 통영땅 후배라는 이유, 그것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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