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군사부일체
[이준의 역학이야기]군사부일체
  • 경남일보
  • 승인 2015.05.2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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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다. 율곡 이이(李珥)는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일체이니 정성껏 받들어야 하며, 자기 생각대로 스승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좋지 못하다.”라고 하셨다. 그 존재감이 지극하기에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밞을세라 옛 사람들은 늘 조심조심하였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본보기가 되고, 백성과 제자와 자식은 마음으로 흠모하며 이에 따랐다. 보임의 가르침과 봄의 배움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답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일구어 낸다. 이로써 사람들은 서로서로 존귀해지고, 관계는 한층 고양된다. 나아가 사후에는 이들의 위패를 모시어 세세토록 기리고 그리워하며, 역사의 맥을 힘차게 이어나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어느 순간부터인지 또는 어떤 격정(激情)때문인지, 군사부의 경외(敬畏)로운 권위를 비웃고 비꼬고 까뭉개는 것이 마치 대단한 지적능력이고 용기 있는 태도인양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게 비정한 말로 조롱하며 까부수는 것이 아주 솔직하고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지경이 되었다. 비천한 욕설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세태가 되었다.

이런 조악한 사회 분위기에서 부모를 죽이는 뉴스가 당연지사일는지도 모른다. 말썽꾸러기 학생에게 손드는 벌을 세웠다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학부모가 학교로 뛰어와 선생님 멱살을 틀어잡고 갖은 욕설을 퍼 부으며 해대는 패악질이 민주적 인권표현으로 각색된다.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고위공직자를 조롱하고 사회지도층인사를 비꼬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아래 자행된 지 이미 오래이다.

자존감의 상실, 분노조절의 실패, 심리적 나약성, 묻지 마 무차별 살인, 난폭 보복운전, 막연한 피해의식, 소외감, 적개심, 증오와 자학, 자살 등 끔찍한 관계단절의 현상이 점점 사회내부로 골 깊게 패이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살벌하고 천박하게 되어버렸을까?

물론 권력 뒤에 감춰진 탐욕, 권위 뒤에 도사린 위선, 성완종 게이트에서 드러나듯 정치권력 자본 고위공직의 거대한 검은 유착,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교묘하고도 기만적인 제도의 악용 등 가만히 보면 열불 나고 분통터지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늘 언론을 통하여 듣고 보니, 고요한 마음, 여기에 바탕을 둔 고상하고 우아한 인간관계를 가다듬어 나갈 겨를이 없다고 변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서 말 수는 없다.

우리는 비록 어렵고 힘겹지만 여유 있는 인간관계의 정립에 애써야 한다. 남을 비꼬고 조롱하고 험담하기는 쉬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칭찬하고 추켜세우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우리사회의 관계를 고상하고 존귀하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어려운 일을 내가 먼저 행하여야 한다.

먼저 부모님, 가족, 일가친척을 소중히 여기는 언행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각양 각층에서 저마다의 지식과 마음 밭을 닦고 전하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풍토를 재정립하여야 한다. 나아가 지금도 불철주야 국민들을 위하여 노심초사 격무에 시달리는 공직자, 사회지도층 인사, 허업(虛業)인줄 알면서 정렬을 불태우는 정치인, 우리를 대표하는 각급조직의 장과 대통령을 존중하고 믿어야 한다. 이런 기풍 속에서 공자님이 말씀하신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의 강건한 국가를 우뚝 세울 수 있고, 올바른 변화의 바람(易風)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백성들은 편안하고 안전한 국가의 보호망 속에서 풍요롭고 넉넉한 인심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푸르른 오월, 뜻 깊은 가정과 스승의 달을 넘기면서 관계의 존귀한 정립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이준의 역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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