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민 (창원총국 취재부장)
청암면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남으로 4km까지 이어진 하동군 중부의 작은 면이다. 예부터 이 지역을 관통하는 계곡에 청암, 즉 푸른 돌이 많아 그렇게 불렸다. 지금도 청암계곡에는 집채만한 바위서부터 조약돌까지 푸른 돌이 유난히 많다. 푸른 돌 일색인 이곳에 군계일학 하얀 바위가 몰려 있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 백암동천이라고 부르는데, 푸른 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얀 바위가 대우받는 격으로, 그만큼 푸른 돌이 많다는 의미다.
▶1984년 청암계곡 중이· 상이리 일대에 하동댐이 착공되면서 푸른 돌의 운명은 박산이 났다. 댐 건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은 가옥과 옥답을 완전히 비워야 했고, 동시에 크고 작은 푸른 돌도 업자를 통해 외부로 팔려 나갔다. 대형 포클레인과 트럭이 동원돼 수백 수천 개의 바위가 도회지로 옮겨졌다.
▶그 푸른 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립 경상대학교가 가좌동으로 이전하면서 새 표지석이 필요했다. 이때 사용된 돌이 청암에서 나온 돌이다. 현재 대학 정문 오른쪽에 서 있다.
▶최근 김해시가 시청사 표지석을 새로 세웠다. 사용된 돌은 자동차만한 크기로 말(馬) 형상을 하고 있다. 이 표지석 역시 청암에서 나온 돌이다. 어떤 경로로 시청 표지석까지 됐는지 알 수 없지만, 30년 만에 등장한 ‘청암’이 반갑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시 하동댐 건설로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고 지역주민 1000여명이 뿔뿔이 흩어져 청암을 떠났기 때문이다. 최창민 창원총국취재부장
▶1984년 청암계곡 중이· 상이리 일대에 하동댐이 착공되면서 푸른 돌의 운명은 박산이 났다. 댐 건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은 가옥과 옥답을 완전히 비워야 했고, 동시에 크고 작은 푸른 돌도 업자를 통해 외부로 팔려 나갔다. 대형 포클레인과 트럭이 동원돼 수백 수천 개의 바위가 도회지로 옮겨졌다.
▶그 푸른 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립 경상대학교가 가좌동으로 이전하면서 새 표지석이 필요했다. 이때 사용된 돌이 청암에서 나온 돌이다. 현재 대학 정문 오른쪽에 서 있다.
▶최근 김해시가 시청사 표지석을 새로 세웠다. 사용된 돌은 자동차만한 크기로 말(馬) 형상을 하고 있다. 이 표지석 역시 청암에서 나온 돌이다. 어떤 경로로 시청 표지석까지 됐는지 알 수 없지만, 30년 만에 등장한 ‘청암’이 반갑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시 하동댐 건설로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고 지역주민 1000여명이 뿔뿔이 흩어져 청암을 떠났기 때문이다. 최창민 창원총국취재부장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