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6.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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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황제 에르네스트 오펜하이머
 
 
다이아몬드는 17세기 유럽 왕실 혼사 예물로 처음 사용됐다. 이후 결혼반지로 가장 많이 쓰인다. 단단한 금강석처럼 부부 사랑도 깨지지 말라는 상징적 의미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는 58개면으로 이뤄진 탄소의 결정체로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돌이다. 이런 다이아몬드는 흙 1500톤을 파헤쳐야 1캐럿의 원석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 가치는 이른바 4C 즉, 무게(Carat), 색(Colour), 투명도(Clarity), 컷(Cut)에 의해 결정된다. 다이아몬드를 처음 발견한 것은 186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 킴벌리 시 근처의 드 비어스(De Beers) 형제 농장에서였다. 1871년 영국의 모험가이자 기업가인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가 드 비어스 광산의 소유권을 매입했다. 그는 이 광산을 기반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남아프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사들였으며, 마침내 1888년에는 로즈는 유대 금융인 로스차일드가의 지원으로 드 비어스 광산회사를 설립했다.

에르네스트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는 1880년 독일 헤센 주의 프리트베르크에서 유태계 소규모 담배상인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7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유대인 다이아몬드 중개상 견습 사원으로 입사해 보석 일을 배웠다. 1902년 남아프리카의 대단위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킴벌리 광산으로 파견돼 원석을 선별하고 구매하는 업무를 맡는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12년 킴벌리 시장을 지냈고 후일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오펜하이머는 케이프타운 영국 총독을 지낸 세실 로즈가 1888년 창업한 다이아몬드 기업 드 비어스사에 들어가 능력을 인정받는다.

로즈가 마땅한 후계자 없이 죽자 오펜하이머는 야금야금 드 비어스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는 유대 금융인 쿤 뢰프와 미국 금융가 JP 모건 등의 재정 지원으로 보석업체 앵글로-아메리카사를 설립하고 훗날 드 비어스와 통합했다. 그는 이후 비열하고 비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경쟁사들을 몰락시켰으며, 아프리카의 부패 정권에 뒷돈을 대 대다수의 광산 채굴권을 독점한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 정보부와 외교부를 두고, 적대적 인수, 주가 조작, 가격 담합 등 수많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재산 규모를 알기 어려울 정도의 부자가 된다.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흑인 노동자들을 가혹하리만큼 착취했다. 또 공급량 조정과 가격 조작으로 경쟁사의 몰락을 유도하고 망한 경쟁사를 헐값으로 사들여 악명을 드높였다. 흑인 노동자가 임금에 불만을 갖고 인상 투쟁을 하자 그는 이들을 모두 내몰고 더 값싼 중국인 노동력을 투입했다. 1929년엔 그의 평생 숙원인 드 비어스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른다. 승승장구하던 오펜하이머도 1930년대가 되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의 경제 공황과 유럽의 경기 하락으로 다이아몬드 판매고가 급격하게 줄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그는 재고를 덤핑하지 않고 정교하게 세공한 후 오래 보관했다. 그는 종전 후 전후복구사업과 산업부흥기에 맞춰 민수용·공업용 다이아몬드 재고를 국제시장에 내다 풀어 많은 수익을 얻었다. 오펜하이머는 절체절명의 파산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다이아몬드의 황제로 우뚝 섰다.

드 비어스사가 남아프리카에서 채굴한 원석은 조하네스버그 공장에서 1차 가공된 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재가공 된다. 완제품은 뉴욕 47번가,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파리 방돔 광장 보석상에서 고가로 판매된다. 다이아몬드의 황제로 군림하던 오펜하이머는 지극히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1957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아들 해리, 그리고 손자 니콜라스가 가업을 이었다. 드 비어스사는 상장된 공개 기업이 아닌 개인 기업 형태로 오펜하이머 가계가 계속 지배하고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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