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용사 김재권씨 "전쟁은 참혹"
한국전쟁 참전용사 김재권씨 "전쟁은 참혹"
  • 임명진
  • 승인 2015.06.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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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25전쟁 65주년…안보의식 되새겨야
김재권씨

 

“압록강까지 북진했을때는 이젠 통일이 되겠구나하고 모두가 기뻐했지요. 중대원들도 전쟁이 끝나 고향에 돌아가는 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6·25전쟁 당시 최초로 압록강까지 진격한 국군 제6사단 7연대 1대대 1중대 소속 김재권(87)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진주 출신 김씨는 전쟁이 발발한지 5일째인 1950년 7월1일 입대했다. 김씨는 전쟁 동안 압록강 도착, 중공군 참전, 가평 전투, 용문산 전투, 평양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숱한 전투에 참가했다. 압록강에서 맞은 아침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김씨는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해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을 거듭한 끝에, 10월 26일 새벽 2시15분께 눈보라를 맞으며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에 도달했습니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순간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생각에 다들 들떠 있었습니다”

당시 중대장은 주 베트남 공사로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직전 교민들의 안전한 탈출을 지휘하다 사로잡혀 4년간 포로생활을 한 이대용 전 공사였다.

중대원들과 함께 집에 돌아갈 부푼 꿈을 꾸던 김씨. 하지만 불과 36시간 뒤 악몽같은 상황이 찾아왔다.

국경너머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김씨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죽음의 탈출을 감행했다.

“중공군 대부대가 겹겹히 둘러싸면서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거기다 북진속도가 너무 빨라 뒤에는 후퇴하는 인민군이 매복해 있고, 도처에 적이 도사리고 있어 소대 병력으로 분산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김씨의 중대는 10월27일 청천강 도강중에 집중공격을 받아 중대병력이 거의 궤멸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며 천신만고 끝에 평안남도 맹산 부근에 집결했지만 이미 중대원은 대부분 전사하고 겨우 40여 명만 살아 남았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한 김씨 부대는 용문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패배를 설욕했고 화천댐 수복, 백마고지 전투 등 숱한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제대한 지 60여 년이 훌쩍 지난 김씨는 “전쟁은 참혹합니다. 절대로,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면서 “한국전쟁 기념일을 맞아 젊은 세대들이 국가안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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