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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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5.07.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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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
노영순
중·고등학교 기말고사가 이번 주를 고비로 끝나 간다. 올해부터 중학교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가 대폭 증가했다. 고등학생들도 체험학습이나 소풍을 다녀오면 기행문 쓰기로 수행평가를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 입사시험에서도 글쓰기 평가를 강화하는 추세다. 영어 실력은 뛰어나나 국어로 기획서를 쓰게 하면 내용이 없고 논리가 단순해 형편없는 평가를 받는 신입사원이 많다는 데서 직장인의 글쓰기 능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글쓰기야말로 고차원의 업무 능력이다. 아무리 짧거나 긴 보고서라도 상단에 몇 줄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드러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

필자는 1960년도에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를 다녔다. 국어 숙제는 한 과를 문단 별로 나누어 중심 주제를 찾아 요약한 후, 모르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공책에 정리해 오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책을 정독하고 요약하는 숙제였으므로 당시에 유행하던 표준전과를 베끼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전과를 가진 학생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밤이 되면 아버지께서 직접 그날의 숙제를 검사하셨다. 게다가 교사였던 아버지는 국어사전은 사 주시되 전과 같은 참고서는 절대로 사 주시는 분이 아니셨다. 공책도 다 쓴 것을 검사하신 연후에야 새 공책을 내주셨다. 여백이나 행간까지도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 것은 기본기에 속했다.

그런데 내가 한 숙제는 매번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다. 형식 단락을 내용 단락으로 나누는데 표준전과와 약간씩의 오차가 났기 때문이었다. 전과를 볼 수 없었던 나는, 표준전과와 똑같아야만 사인을 해 주시는 선생님의 눈에 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지금 와 생각하니 나를 키운 것은 서정주님이 말씀하신 ‘팔 할의 바람’이 아니라 표준전과와의 싸움이었다.

당시에는 책이 귀했으므로 시집을 빌려오면 읽는 게 우선이 아니라 전부 베끼고 나서 돌려주었다. 그래서 문학 소녀라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시 노트를 갖고 있었다. 말린 나뭇잎에 좋아하는 시 한 소절을 예쁘게 적어주는 것이 생일 선물로 최고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시는 따로 외우는 게 아니라 수십 번 베끼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기도 했다. 2독, 3독까지 하다 보니 정독은 물론 자연스럽게 속독까지 되었다. 필자는 비논술의 시대를 살았으나 절대적인 논술 교육을 받은 셈이다.
 
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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