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역 여든여섯 아부지
바쁜 현역 여든여섯 아부지
  • 경남일보
  • 승인 2015.07.0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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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김해시 시민복지관 장애인 복지담당)
황숙자
“아부지, 오늘 부산항 대교로 드라이브 가요.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한번 가시고 싶어 하셨잖아요?”. “오늘은 못 나간다. 고추도 따야 되고 깻잎 모종도 옮겨야 하고, 바빠서 안 된다”. 86세 아부지 나들이 할 시간 없다며 하시는 말씀이다.

미리 외출 약속을 잡지 않고 갑자기 어디 가자면 바빠서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러실 땐 속으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86세에 뭐가 그리도 바빠 딸이 놀러 가자는 데도 거절하시다니. 그 연세 어떤 분들은 세상을 먼저 등졌거나 거동이 불편해 집이나 병원에서 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엄마를 먼저 보내고 홀로서기 하신 지 어느덧 5년째. 고령 아부지의 취미이자 직업은 농사다. 평생을 흙에서 보내셨기 때문에 늘 하던 일손을 놓지 못하고 계신다. 힘에 부칠 때는 “올해만 하고 말꺼다” 하고 입으로는 말씀하시면서도 손으로는 내년도 심을 종자수확을 하신다. 언 땅이 녹는 이른 봄부터 김장배추 수확을 마무리하는 늦가을까지 밭에 멀칭하고, 모종 심고, 물주고, 잡풀 제거하고, 수확하느라 바쁜 덕분에 고추, 오이, 가지, 정구지 등 각종 야채로 자식들의 식탁은 늘 풍성하다.

요즘 주위에 보면 신체도 정신도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지만 60 즈음 퇴직한 중년들이 일상을 무의미하게 보내거나, 공원에서 그저 멍하지 앉아 있는 노인들을 많이 보게 된다. 물론 복지관이나 학원 등에서 나름의 취미생활을 하면서 여유있게 지내는 분들도 있다. 일상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놀기만 반복된다면 무료하기도 하고 삶이 무미건조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하는 노인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고 한다. 새로운 일을 배우든, 봉사활동을 하든, 텃밭을 가꾸든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계속할 수 있는 소일거리 한두 개쯤 가지면 86세 현역 아부지처럼 심신이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일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다’라는 안병욱 수필가의 말처럼 늘 일하는 아부지의 모습에서는 인생의 지겨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주말에도 아부지 밭에서 각종 야채를 뜯어와서 아이들이랑 먹으며 할아버지의 인생과 노년을 어떻게 맞고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황숙자 (김해시 시민복지관 장애인 복지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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