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일제강점기, 35년이다
[교단에서] 일제강점기, 35년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08.09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한국과 일본은 이웃하고 있다. 가까워 애증이 교차되기도 한다. 가야제국은 철기문명을 왜로 수출하고 가야방까지 운영했다. 백강전투를 전후로 백제인은 왜로 수십만 명이 망명했고, 668년에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옥전평원(합천 쌍책)에 다라국이 있었다. 덩이쇠를 주요 수출품목으로 국제무역을 했고, 특히 규슈지역에 다라방을 두었다. 562년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14척의 배에 유민을 싣고 규슈에 안착해 ‘대다라국’을 건설하려 했다. 백제는 왜에 천자문 및 칠지도 등을 전하는 등 교류가 활발했으며 백제의 왕자 및 왕족이 왜국에 머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의자왕에게 많은 형제가 있었는데 누이동생은 왜의 제명여제이다.

백강전투는 국제전쟁으로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다. 백제 부흥군은 사비성을 포위하는 등 점령군에게 완강하게 저항한다. 귀실복신은 왜왕에게 왜에 머물고 있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의 귀국을 요청해 661년 왜병 5000명을 지휘해 고국에 돌아온다. 제명여제는 663년 2700명의 대군으로 부여풍의 뒤를 따르게 했는데 급조된 구원군은 참패하고, 왜로 망명한 백제인들은 일본국 탄생에 기여하게 된다.

철수하는 왜선에 특별한 유민들이 많았다. 귀실복신의 아들 귀신집사는 오늘의 문교장관 겸 대학총장인 학직두의 직책을 맡아 신생국의 기틀을 다졌으며, 3살짜리 태안만려와 그의 어머니(온사녀), 온사녀는 선상에서 죽고 아들은 삼촌이며 천무천황의 일등공신이 되는 다품치의 양자로 들었지만 무사의 길을 포기하고 승려가 돼 비조사로 들어간다. 모국을 그리는 마음에 제기 등 사료를 수집해 일본 최고의 역사서를 편찬한다. ‘일본서기’ 663년에 ‘오늘로서 백제의 이름은 끝났다. 고향땅 곰나루에 있는 조상의 묘를 언제 다시 찾을까’라는 기록은 있지만 고구려가 멸망하자 천지천황이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의 공표에 한마디로 기술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과거는 돌아보는 대상이지 현재가 아니며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지혜로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일제에게 강제로 국권을 빼앗긴 기간은 얼마인가. 시작은 ’10. 8. 29이고 끝 시점은 ’45. 8. 15이라 십사일이 모자라는 35년이다. 오욕의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일제의 강점기간은 36년이 아니라 35년이다.

 
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