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통영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통영
  • 곽동민
  • 승인 2015.07.30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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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언덕…소설가의 골목, 문학이 피던 곳
▲ 청마문학관 앞에서




삶이 팍팍하고 현실이 아플수록 우리는 지난날의 추억, 그것도 가슴 한켠에 묻어둔 ‘그리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나 고통이 그리움으로 바뀌어 치유와 힐링이란 이름으로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을 때가 있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다섯 번째는 그리움과 허무의 시인, 유치환이 머물고 있는 청마문학관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박경리기념관, ‘꽃’의 시인 김춘수,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화가 전혁림기념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을 친견하기 위해 문학과 예술의 고향인 통영 바다로 풍덩 빠져 무더위도 잡고 힐링도 하는 힐링여행을 떠났다.

진주에서 통영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먼저 필자를 젊은 날의 추억 속에 종종 가둬 놓은 그리움과 허무의 시인 유치환을 만나기 위해 청마문학관부터 찾았다. 청마문학관은 본래 태평동에 있던 청마의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곳으로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학관이 함께 세워져 있어 청마의 문학적 일대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문학관 뒤쪽엔 부친께서 약국을 경영했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생가를 옮겨서 복원한 자리지만 정말 명당터다. 통영 앞바다를 내려다보면 시상이 절로 우러날 정도다.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러브스토리-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초가지붕인 청마생가 앞에서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연시(戀詩) ‘행복’의 마지막 부분이다. 청마와 이영도가 처음 만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근무했던 통영여중 교사 시절이었다고 한다. 이영도는 딸 하나를 둔 29살 과부였고, 그녀보다 아홉 살 많은 청마는 유부남이었다.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던 이영도에 대한 연모의 정을 품게 된 청마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낭만적으로 구애를 한다. 퇴근 후, 수예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이영도를 보기 위해 청마는 수예점이 보이는 중앙동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썼다고 한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인연이기에 청마가 보내는 연서는 더욱 간절함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연서를 보내는 순간이 청마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때 보낸 시 중의 한편이 ‘행복’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의 영혼이 교감한 사랑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시적인 사랑이었다.

청마가 60살이 되던 1967년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동안 이영도에게 띄운 연서가 무려 5000여 통이나 된다고 한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영혼끼리의 사랑은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영도는 자신이 받은 편지 중, 200통을 가려뽑아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이름의 서간집을 펴내기도 했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사랑을 주거나’,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더욱 행복하게 하는 길이자 힐링이라 생각한다. 청마문학관을 답사한 뒤 500m정도 바닷가 길을 따라 가면 이순신공원이 나온다. 해변을 끼고 조성해 놓은 공원은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정말 절경이다. 그리고 8월 15일을 전후해서 3일간 재현하는 학익진 전투 또한 망루에서 바라보면 정말 장관이다. 학익정에서 내려다보는 통영 앞바다는 청마와 이영도의 못다 이룬 사랑이야기로 인해 아련하면서도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 박경리 선생 묘소에서 내려다 본 통영 바다


◇문학과 예술의 모항(母港), 통영



문화, 예술의 도시답게 통영은 가는 곳마다 문학인과 예술인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해저터널을 지나 미륵도로 건너가면 ‘꽃’의 시인 김춘수유품전시관과 그의 절친이면서 통영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전혁림의 미술관을 탐방할 수 있다. 한국의 피카소, 또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렸던 그의 그림세계를 엿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산양읍 쪽으로 넘어가면 ‘토지’의 작가 박경리기념관을 만난다. 통영이 낳은 위대한 작가 박경리, 통영을 배경으로 해서 쓴 대표작 ‘김약국의 딸들’과 대하소설 ‘토지’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기념관 뒤에는 소박하게 자리잡은 작가의 묘소를 만나고, 묘소에서 바라본 바다는 작가의 사후 한국문단에 끼친 영향을 말해 주는 듯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들에게 선사해 준다.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윤이상 선생의 생가와 인접한 지역의 거리인 해방교에서 해저터널까지의 789m를 2001년 2월 윤이상 거리로 지정하였다. 거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도천테마공원’이라 이름 붙여진 윤이상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생전에 이념과 예술 사이에서 각종 사건에 연루되어 자유롭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결국 조국땅마저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내 음악의 모태는 통영의 바다와 갈매기 소리’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통영은 예술적 영감의 시원(始原)이었고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에겐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통영, 어쩌면 근대문학과 예술의 모항(母港)이라고 할 만큼 위대한 문인과 예술가들이 많이 탄생한 곳이다. 예술가들의 인문학적 사고가 바탕이 된 창작 정신, 문화인끼리의 깊은 교유, 그러면서도 진정한 낭만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일깨워주는 곳, 통영. 시와 음악, 그림을 통해 세속적인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행복의 키를 키우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미지에 대한 동경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하고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정녕 힐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 남망산공원 중턱에 있는 청마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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