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출신 재불화가 김명남 ‘빛의 묘법’ 개인전
진주 출신 재불화가 김명남 ‘빛의 묘법’ 개인전
  • 곽동민
  • 승인 2015.08.09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9월16일 서울, 20~9월14일까지 부산
▲ 김명남 作 ‘하얀 묘법’

빈 캔버스라고 생각했다. 작업실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세워진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순백의 화면이었다. 화가의 작업실에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한 물감 냄새도, 색을 입은 작품도 전혀 보이지 않으니 그럴밖에.

그러나 8월의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창문을 가려놓은 종이라고 생각했던 창틀만한 한지를 가만히 쳐다보던 나는 고개를 휙 돌려 다시 빈 캔버스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순백의 화면, 그 곳에는 은하수를 닮은 새하얀 그림이 이미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진주 이반성면 한켠에 자리한 정수예술촌.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베르사유 미술대학 판화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김명남 작가는 매년 여름, 고향인 이곳을 찾아 작품활동을 하고 전시회를 준비한다.

올해는 13일부터 9월16일까지 서울시 중구 신세계백화점 12층 전시실, 20일부터 9월14일까지 부산 해운대 신세계백화점 6층 전시실에서 ‘빛의 묘법’ 개인전을 연다.

‘빛의 묘법’. 김 작가는 ‘하얀 묘법’이라고도 표현했다.

하얀 도화지 위에 하얗게 그리는 그림이니, 붓도 물감도 필요없다. 대신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항시 손가는 곳에 두셨을 법한 실과 반짇고리, 그리고 하얀 도화지에 점을 찍을 송곳이 그의 작업도구였다.

진주에서 태어나 지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해나가던 김 작가는 1993년 프랑스로 건너간다. 초기에 수채화를 많이 그렸던 작가는 프랑스에서 판화,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이후 작가의 작품에서는 점점 여백이 더 많아졌다. 최근에는 투명함 마저 사라지고 여백으로 가득 찬 하얀 작업을 한다. 이 여백에는 작가의 수채화 시기의 갈등부터 맑은 회화의 투명성까지 모든 것이 배어있다. 또 작가의 예술적 여정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고 있는 관람자의 삶의 여정도 함께 스며든다.

작가가 이처럼 색이 사라진 하얀 작업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녹내장을 얻어 앞으로 그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져 갔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작가는 완전히 색을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 작가는 “흰색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함께, 모든 환경, 변화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풀어 가기로 했다. 그렇게 색을 모두 제거하고, 바느질로 만들어지는 선 혹은 송곳으로 작은 구멍 들을 만들어 드로잉을 하듯, 혹은 평면의 조각을 하듯 그런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작가가 매일 새벽 새하얀 화면에 송곳으로 종이를 뜨며 기도하듯 써내려간 ‘하얀 묘법’ 작품과 삶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주제로 한 ‘저 너머’ 작품들이 전시된다.

‘저 너머’ 연작을 두고 작가는 “작품 속에 뚫려 있는 구멍과 작은 사람, 그 사이를 잇고 있는 실이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보고 들어줄수 있는 소통되는 삶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나간 작품이다. 특히 제각기 다른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너무나 다른 삶의 색깔들을 하얀 여백이 품어 줄 수 있기를 바랬다”고 고백한다.

김 작가는 하얀 묘법 연작에 대해 “명상 하듯 조용히, 기도하듯 송곳을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나의 유년의 기억과, 내 주변의 자연과, 그리고 삶의 언저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삶의 진한 향기들이 묻어나오는 글들이 내 작업에서 선으로 면으로, 운률을 맞추며, 리듬을 찾아내고, 시 들의 향연이 시작된다”며 “환희와 격정, 때로는 가슴의 울분이 글로 녹아 내린다. 송곳으로 종이를 뜨고 있을 때 공간에 퍼지는 소리와 함께 일기를 쓰듯 하얀 글들을 쓰고 있다. 조용한 새벽녁이면 송곳으로 만드는 음악은 나를 더욱 깊이 화면에 파고들게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새하얀 작품들을 기도하듯 그려나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구도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작업 도구를 손에서 내려놓은 그녀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도 가감없이 내보였다.

그녀는 “요즘 아들녀석이 사춘기다. 최근 좀 다퉜는데 엄마가 사과하기 전까지는 나와 얘기를 하지 않겠다더라. 전시가 끝날 때까지 만나기가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라며 가족에 대한 애정어린 웃음을 지었다.


곽동민기자 dmkwak@gnnews.co.kr





김명남 作 ‘저 너머’
김명남 作 ‘저너머’ 설치


김명남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