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화재 여행] 함안 고려동유적지
[경남 문화재 여행] 함안 고려동유적지
  • 여선동
  • 승인 2015.07.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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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고장 함안, 지켜온 마음에 옷깃을 여민다
 
고려동유적지


함안은 충절의 고장이다. 함안은 남고북저의 지형,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면서 일찍부터 고대 문명을 꽃피우기 시작한 땅이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을 대표하는 나라 안야국이 세워졌으며, 주변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통합 발전해 가야제국의 맹주 아라가야가 됐다.

아라가야 왕들은 말이산에 그들의 600년 흥망성쇠의 역사를 고스란히 묻어놓은 고장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말이산고분군을 비롯해 지방지정 유형문화재 무산사, 서산서원, 고려동유적지 등이 충절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동(高麗洞)유적지=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 내 위치한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했다. 그는 아들에게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神主)를 이곳에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했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답 9만9000㎡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배출한 이곳을 1983년 8월2일 경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무산사


◇무산사(武山祠)=무산사는 함안칠서면 무릉길 75에 위치하며 조선조 명종 중종대의 유명한 유학자이며 최초로 서원을 건립한 주세붕(周世鵬)선생(1495∼1554)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본래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은 선조 24년(1591)동림서원(桐林書院)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병화로 소실되고, 현종 원년(1660)본향 남고에 중건되었다가 숙종2년(1676)에 왕으로부터 덕연(德淵)이라는 이름으로 사호됐다.

이후 고종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자 영정을 종가(宗家)사당(祠堂)에 옮겨 모셨다가 1919년에 사림의 공의로써 사당 곁에 전각을 세워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그 곁에 서당을 세워 후학 등을 가르쳤는데 그것을 무당서당이라고 불렀다.

건물의 배치는 서당을 중심으로 후면에 무릉사와 영정을 봉안한 광풍각(光風閣) 서적과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 등이 등고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됐다.

현재의 무산서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일자형 평면으로 중앙2칸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측에 각각 2칸과 1칸의 방을 꾸며 전형적인 서당의 공간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형태도 포작의 꾸밈이 없는 민도리집이며 부연이 없는 홑처마의 팔작지붕 와가이고 구조 또한 도리가 셋으로 구성되는 3량 가구로서 단순성을 보여준다.

광풍각에는 주세붕 선생의 영정이 모서져 있고 장판각에는 무릉잡고, 수구집, 귀봉집 책판 352매가 보관되어 있다.

소수서원을 세운 우리나라 서원의 창설자인 주세붕 영정은 1976년 유형문화재 142호로 지정돼 있고 조선 중종때의 거유로서 풍기군수 재임 중(1543) 이 영정은 가로 1m,세로 1.5m인 경본의 족자형에 담채화로서 선생의 생존시에 그렸다고 전한다.

현재 무산사는 서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지만 주씨 동족부락인 이 마을의 정신적 상징으로 남아 주세붕 선생의 탄신일인 음력 10월25일 두 부인을 포함한 기제사가 향사되고 있다.



 
서산서원


◇서산서원(西山書院)=조선시대 서원으로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위치한 서산서원은 1703년(숙종29)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 등이 생육신인 경은 이맹전, 어계 조려, 관란 원효, 매월당 김시습, 문두 성담수, 추강남효온 등의 병향(幷享)이 사육신(死六臣)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왕에게 상소하여 허가를 받아 세운 서원이다.

1713년에 국가에서는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무진년(1868)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됐다. 광복 후 조려 선생의 후손들이 서원을 복원코자 성금을 모아 3000평의 대지에 5억원의 기금으로 3년이 넘게 복원하여 1983년 사우, 강당, 재료, 문, 원단 등을 갖춰 중건했다.

또 조선 전기 문신 어계조려(1420∼1489)선생이 태어난 어계생가는 군북면 원북길에 있으며 지방유형문화재 159호 지정돼 있다. 조려선생은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주어 장례를 치룬 뒤 왕의 얼을 동학사에 모셨다. 그 후 어계선생은 이곳에서 낚시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합강정에는 조선 인조때의 학자 간송 조임도 선생은 학문이 뛰어나고 효심이 지극하여 백효라고 불렸다. 인조반정 후 한때 공조좌랑까지 지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를 벗삼아 학업과 수신에 힘서 풍수음, 유모가 금라전언록 등을 저술했다. 간송집은 영조 20년(1744)에 간행한 것이며 금라전언록은 함안의 역사와 여말 충신 이방실 장군을 비롯한 함안 출신의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순조 13년(1813)에 간행한 유형문화재 제180호 책판 190매가 함안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여선동기자 sundo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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