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와 어머니들의 1박2일
고향친구와 어머니들의 1박2일
  • 경남일보
  • 승인 2015.08.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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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경남교육청 과장)
김동환
고향 친구들이 모여 칡넝쿨회란 친목회를 만들어 수년간 이어 왔다.하지만 직장과 결혼으로 뿔뿔이 전국에 흩어져 살고,부모님들도 자식을 따라 반 이상 시골을 떠나서 살고 계셨다. 그러다가 60세를 눈앞에 두고 친구들이 한번 모이기로 했다. 그때 친구들이 모이면서 부모님을 함께 모셔오기로 했는데, 13명 친구들의 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모두 살아 계셨다.

13명 중 10명의 친구와 어머니들이 모였는데 모두 같은 연령대로 같은 시기에 시집 온 비슷한 시대의 각시들이었다. 시냇가에서 같이 빨래하고 아기 낳고 키우며 살아온 시골 아낙네들의 수십년 만의 만남이기도 했다.

80대 후반의 할머니들은 하얀 파뿌리같은 머리에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식당에 들어오셨다. 서로 바라보는 순간 반가워서 눈물부터 보이다가 팔을 벌려 얼싸 안았다. 우리 친구들끼리의 만남도 좋았지만 어머니들의 모임은 우리에게 정말 큰 즐거움이었다. 점심 후 가까운 펜션으로 가서 각자 끼리끼리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수십 년의 회포를 풀었다.

저녁식사와 막걸리를 한잔씩 하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노래판이 펼쳐졌다. 노래방 기계도 노래책도 없었지만 어머니들은 잊고 지냈던 옛날 노래를 구수하게 이어갔다. 우리도 신나게 노래하며 어머니를 등에 업고 빙글빙글 돌면서 흥에 빠져들었고, 펜션의 마당은 온통 잔치 분위기로 깊어 갔다. 그날 숲속의 펜션마당에서 벌어진 흥겨운 잔치는 흔히 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화였다.

다음날 새벽 무렵에 아들들이 자는 방에 어머니 한분이 살며시 들어오셨다. 그 어머니는 곧 백세가 되시는 분인데, 서울에 사는 막내아들을 자주 보지 못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 새벽잠을 깨고 건너오셨다. 밝아오는 새벽의 어스름 속에서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자식모습을 한꺼번에 눈에 담고 있는 것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아쉬워 다시 모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 어머니들의 대부분은 요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 정말로 이보다 좋은 단어의 조합이 또 있을까. 하지만 요즈음은 천륜에 반하는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 때문에 이 좋은 단어의 조합도 오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동환 (경남교육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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