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취업교육과 시민교육
[객원칼럼] 취업교육과 시민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5.08.2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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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열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교수)
자식교육에 대한 지상목표는 명문대 입학을 통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중·고로 이어진 사교육과 입시경쟁이 무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는 아이의 곁을 빙빙 돌며 자녀를 일일이 지휘하고 감독하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있다. 열성 부모들은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 가고 부부가 떨어져 생활하는 기러기 신세도 감내한다. 반대로 ‘방임형 부모’는 아이가 제멋대로 행동해도 내버려두면서 스스로 절제하는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 자식들을 버릇 없도록 방치하고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착각하고 있다. 대학이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직업교육기관으로 역할을 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교육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변모한데서 기인하고 있다.

오찬호는 ‘진격의 대학교’에서 한국 대학이 학문탐구와 지성의 요람이 아니라 취업준비 기관으로 변해 버렸다고 토로하고 있다. 교양교육은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강좌로 구성되고, 전공교육은 학과 필수과목을 제외한 선택과목은 폐강되는 반면에 취업에 유리한 경영학 과목은 북새통을 이루고, 토익성적 올리기에 몰두하고 다수의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며, 동아리와 교외활동도 취업스펙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채워진다. 또한 대학은 기업화돼 모든 것을 효율성의 잣대로 밀어붙이다 보니 인문학은 고사위기에 빠지고 기업이 요구하는 순응형 인재를 기르다 보니 비판과 상상력이 배제된 죽은 시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공부의 배신’에서 미국 명문대가 엘리트 교육을 통해 현실에 순응하는 똑똑한 양떼(excellent sheep)를 양산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기술을 가진 리더를 목표로 교육시키다 보니 학생들은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무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는 것’에 매달리게 된다. 법조, 의료, 금융계 및 유명 기업에 취직하거나 대학원 진학 외에 다른 방향은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부모와 주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인간관계와 모험·취미활동 등 영혼을 살찌우는 모든 것을 희생한다. 엘리트가 되기 위한 이러한 공부는 스트레스가 돼 아이들을 우울감에 빠트리며 인생의 의미를 찾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당장 취업이 급선무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대학교육이 본연의 자세를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대학에서 취업교육 일변도는 자칫 현실에 안주하는 월급쟁이,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천민 자본가, 융합을 모르고 자기분야에만 몰입하는 전문 바보를 기를 수 있다. 대학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예비 기업가, 사회봉사와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적 지도자, 폭넓은 지식과 비판정신을 겸비한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한다. 대학에서 실용적인 취업교육과 더불어 건강한 시민교육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전찬열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교수) 객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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