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한민족 정신과 향토문화를 잇다
아버지와 딸, 한민족 정신과 향토문화를 잇다
  • 곽동민
  • 승인 2015.08.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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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잇는사람들] 서각 명장 우담 구성본 선생과 딸 소헌 구지하
 
우담 구성본 소헌 구지하.
평생을 바쳐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 그 뿌리의 깊이를 공부하고 그 공부를 지역민들에게 알리는데 매진해온 장인이 있다. 자신의 살아온 스토리 만으로도 놀라운 일일진데, 그의 딸 역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대를 이어 우리 민족 문화 알리기에 땀흘리고 있다.

산청군 오부면에 우리나라 전통한옥을 짓고 ‘소소(昭笑)한집’이라고 이름 붙인 작업공간이자 교육공간에서 우리글의 아름다움과 서각을 가르치고 있는 명장 우담 구성본 선생과 그의 딸 소헌 구지하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굽이진 산길을 올라 명장의 집 앞마당에 서면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마당 아래를 내려다 보면 체험교육을 위해 살뜰이 키우는 백련도 보인다.

아담한 산들이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는 한옥집을 보고 있자니 우리 전통을 지키는 이의 거처로는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마당의 풀이 너무 무성히 자라 오전 내내 제초 작업을 했다는 우담 선생은 “풍광이 좋지요? 3대가 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매일 아침 만나다니, 제가 얼마나 복받은 사람입니까”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집 곳곳에서 ‘공부 하다 죽으면 어떨까’ ‘정다운집’ 등 우담 선생의 삶의 철학이 담긴 서각 작품과 딸인 소헌 선생이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새긴 크고 작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작업실에 앉아 마주한 우담 선생은 요즘 예쁜 손글씨, 즉 최근 캘리그라피라고 불리는 손으로 쓴 글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글씨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무척 기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저 예쁜 글씨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와 정신, 문화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면 더 좋겠다는 소망을 넌즈시 꺼냈다.

우담 선생은 “옛 우리 선조들은 방에도 이름을 붙였고, 집에도 ‘당호’라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작게는 집앞에 붙여놓은 명패, 크게는 팔만대장경까지 모두 서각이다. 우리 민족의 곁에는 언제나 서각이 있었다”며 “칼과 나무와 글과 사람의 재주가 만나서 나오는 것이 서각이고 그 속에는 후손들에게 역사와 지식, 문화를 전해주려는 선조들의 노력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우담 선생이 작품에 채색을 하고 있다.
우담 선생은 자신의 딸이 대를 이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무척 기뻤다고 했다.

그는 “스승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수 있는 우수한 제자를 만나는 것 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이 대를 이어 내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하니 이만큼 행복한 일이 더 있겠나”라며 “대를 잇는 것은 그저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서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또 발전하고 변화하면서도 본질, 원류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각 경력 18년째인 소헌 선생은 아버지의 진전을 거의 다 이어 받았다.

21살.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던 여대생이었던 소헌 선생은 크고 작은 서각칼을 손에 쥐고 나무를 깎아 글을 새기는 과정이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고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소헌 선생은 “처음에는 계속 할 마음이 없었다. 그냥 아버지가 평생 해 오신 일이니 한번 경험해 보자는 생각에 처음으로 가볍게 칼을 잡아봤었다”며 “처음에는 아버지가 칼이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상황에 따라 달리 쓴다는 것을 전혀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작은칼 하나만 가지고 처음으로 치우천왕을 새겼다”고 18년 전 처음 서각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무척 달랐다. 한번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 아버지께서 처음한 것 치고 상당히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시니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직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소헌 선생이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무와 우리글씨를 사랑하는 마음을 타고난 소헌 선생은 금새 서각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1살 때 부터 다른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한길로 매진해온 소헌 선생은 2007년 아시아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참여하고 지난 2012년에는 아시아 미술대전 심사위원까지 맡았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에 올랐다.

실력을 가다듬은 소헌 선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글의 아름다움과 서각이라는 전통문화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각자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나 워낙 젊은 나이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적지 않았다고. 지금은 그런일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심사위원을 맡게 되면 ‘젊은 애가…’라는 식의 쑥덕거림도 많았다고. 심한 경우에는 ‘아버지 덕분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단다. 하지만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은 소헌 선생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 지금에 이르렀다. 우직한 고집으로 한 길을 가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부녀사이다.

소헌 선생은 현재 산청군 평생교육강좌와 거제시 농업기술센터, 진주교육대학에서 서각강사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나무소리서각연구회를 운영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대를 이어 우리 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이들 부녀에게 좋은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담 선생에게 서각 명장을 수여한 것. 선생의 우리문화를 사랑하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우담 선생은 “집집마다 가풍이 있다. 가풍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딸에게 이어져 온 그 집안의 문화다. 그러한 집안의 가풍을 이어 가는 것은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집집마다 다른 가풍이 모이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가 된다. 우리가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문화가 우리 삶속에 녹아 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뉘엿 뉘엿 넘어가는 해가 앞마당을 빨갛게 물들여 갈 때 쯤. 헤어짐의 인사말을 건네는 우담과 소헌의 얼굴에는 그들의 집 이름과 같은 ‘소소(昭笑)’가 달처럼 떠올랐다.

곽동민기자 dmkwak@gnnews.co.kr





 
우담 선생이 치우천왕 서각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좋은인연이란.
서각칼과 작업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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